/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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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유통 부문에 ‘M&A 중단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첫 외부 출신 부회장인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는 영역 확장 대신에 유통사 자체 상품인 PL(프라이빗 라벨, PB로도 쓰임)을 강화하는 등 ‘유통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한 체력을 다지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PL 제조와 관련해선 롯데푸드 등 계열사에만 맡기던 관행을 깨고, 외부에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롯데쇼핑 사업전략부문은 '개점 휴업' 중

16일 투자은행(IB)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최근 검토 중이던 M&A 작업들을 전면 중단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M&A 업무를 총괄하는 유통HQ 사업전략부문이 사실상 M&A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며 “주요 유통 계열사 간 업무 조정과 시너지 창출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올 2월 취임 때부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M&A 및 유통업계에선 이베이코리아(현 G마켓글로벌)를 3조4404억원에 인수한 이마트처럼 e커머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의미로 이를 받아들였다. 쿠팡 잡자고 가랑이 찢어질 투자는 하지 안되, 패션 등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버티컬 플랫폼’에 대한 투자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롯데쇼핑의 M&A 중단령은 당분간 이 같은 소규모 투자도 없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롯데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롯데쇼핑 역사상 첫 외부인 CEO로서 개혁을 위한 전권을 위임 받았다”며 “P&G를 비롯해 영국계 대형마트였던 홈플러스, 글로벌 유통그룹인 DFI리테일에서 H&B 대표를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대형 유통업체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신동빈 롯데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롯데쇼핑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신 회장은 “브랜드, 디자인, IT 등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단기적인 성과만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상품 품목 줄이고, 경쟁력 있는 PL 만들라

김 부회장은 쇼핑 부문에서 만성 적자를 내고 있는 롯데마트에 ‘품질 좋은 물건을 가장 싸게’라는 유통 본연의 DNA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회장은 평소에도 임직원들에게 코스트코홀세일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PL인 커클랜드에서 전체 매출의 30%를 만들어내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롯데만의 PL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노브랜드(약 1조2000억원), 피코크(약 4000억원) 등을 합쳐 PL로만 전체 매출의 20% 수준인 약 2조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마트는 2019년에 38개이던 PL을 10여 개로 정리한 바 있다. 지난해 롯데마트 PL의 매출 비중은 15%였다. PL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김 부회장은 제조사 다변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롯데푸드 등 계열사가 도맡아 하던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그룹 내 유통 계열사 간 유기적인 결합도 김 부회장이 방점을 찍고 있는 과제다. 그룹 차원에서 최근 투자한 한샘과 롯데하이마트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선 이미 가전과 가구를 한 곳에서 판매하는 매장이 대세”라며 “신 회장이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니스톱을 인수한 코리아세븐(편의점 세븐일레븐 운영사)과 다른 유통 계열사 간의 협업도 강조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최근 유통 계열사 사장단 워크숍에서 세븐일레븐의 비빔밥 도시락으로 오찬을 했다”며 “비빔밥 전문 식당 못지 않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진열할 수 밖에 없어 많이 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해보자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롯데쇼핑의 ‘M&A 중단령’과 관련해 일각에선 ‘거품 붕괴’ 이후를 내다 본 장기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e커머스 및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상장에 실패할 경우 자금난에 봉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M&A 시장에선 상장 유망주로 꼽히는 e커머스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자들이 구주를 매각하기 위해 시장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유통업계에서 유일하게 조 단위 투자를 할 수 있는 롯데가 M&A에 나서지 않는다면 e커머스 스타트업들로선 악재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