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그린수소 투자...50년 제련 기업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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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은 사업 영역을 신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재활용), 2차전지 소재 등으로 다양화하겠다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내걸었다. 지난해 호주 최대 재생에너지 업체 에퓨론을 인수하는 등 호주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2차전지 소재와 리사이클링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경ESG] ESG 핫 종목 - 고려아연
비철금속 제련 사업은 가장 전통적 산업인 동시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추구하는 환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원석에서 필요한 광물을 골라내는 작업 자체가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이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은 한국의 고려아연으로, ESG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투자자에게는 투자 기피 대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5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고려아연이 신재생에너지와 재활용(리사이클링), 2차전지 소재 등으로 신사업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최대 재생에너지업체 인수
고려아연은 1974년에 설립해 올해 48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회사다. 이름도 그대로다. 1990년 7월 증시에 상장했다. 30년이 넘는 증시의 오랜 터줏대감이다.
아연, 연, 금, 은 등을 제련해 판매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다. 제련 기술과 생산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아연이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아연은 자동차 및 가전제품 외장재나 건설용 철강재의 부식 방지용 도금 원료로 쓰인다.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원자재의 특성을 지닌다. 최근엔 러·우전쟁으로 국제 아연 가격이 오르면서 매출이 상승했고, 올해는 사상 처음 매출 10조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제련 사업은 전통적 산업이고 설비 산업인 만큼 확장성의 한계가 뚜렷하다. 주가도 그에 따라 움직인다. 올 들어 고려아연은 사업 영역을 신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재활용), 2차전지 소재(동박) 등으로 다양화한다는 내용의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내걸었다. 지난 50년간 이끌어온 제련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려는 포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8월 5일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임팩트의 미국 에너지 분야 투자 자회사 ‘한화H2에너지 USA’에 5% 지분을 넘긴다고 공시했다. 한화임팩트는 LNG가스터빈을 수소가스터빈으로 전환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4718억원을 조달하는 동시에 수소 등 신사업 분야에서 한화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계약이다.
이렇게 조달한 돈은 고려아연의 호주 재생에너지 투자에 활용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호주 최대 재생에너지업체 에퓨런(Epuron)을 약 3660억원에 인수하는 등 호주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 호주에 124MW 규모의 태양광발전단지를 운영 중이다. 또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와 협력해 그린수소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호주에서 그린수소를 생산, 국내로 수입하겠다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그린수소사업은 긴 시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한화그룹과의 협력이 시너지를 일으킬 뿐 아니라 사업 리스크를 낮추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2차전지 소재 투자 확대
또 다른 신사업은 2차전지 소재다. 고려아연은 2차전지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케이잼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2차전지 필수 소재로 전기차 시대를 맞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공격적 증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력과 공정상 어려움이 커 후발 주자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소재사업이기도 하다.
지분율 100% 자회사 케이잼은 올해 말 1차 생산능력 1.3만 톤을 갖출 예정이다. 최근에는 추가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동박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까지 1만7000톤을 추가해 총 3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기존 계획에 2026년까지 3만 톤을 추가 증설할 계획이다. 6만 톤은 현재 가격인 톤당 약 2000만원을 적용할 때 연 매출 1조2000억원 규모다. 동박 투자 금액만 총 7356억원 규모다. 본격적 수익 구간은 내년으로 예상된다. 수익이 나면 주가 재평가 기대가 높아질 수 있다.
지분율 35%의 자회사 켐코와 LG화학이 손잡고 전구체 합작법인(JV), ‘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만든 것도 2차전지 소재 사업의 하나다. 전구체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의 중간 원료다. 이 합작법인에서 생산한 전구체는 북미 핵심 수요처에 공급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의 투자금액은 1000억원이다. 켐코 지분율은 51%다.
최근엔 리사이클링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전자폐기물(E-scrap) 재활용업체 이그니오 홀딩스를 약 4324억원에 인수했다. 이그니오는 전자폐기물 재활용업계의 선두주자다. 전자폐기물에서 구리정광을 추출하는 독보적이고 검증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구리는 동박의 원료이기도 한 만큼 동박 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이그니오는 북미 전역에 2개의 공장, 6개의 허브를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차전지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도 진출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청사진이다.
중장기적 주가 재평가 기대
고려아연은 전통산업인 만큼 그동안 경기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는 주가 흐름을 보였다. 전형적인 박스권 주식이었다. 올 들어 지난 8월 중순까지 주가는 20% 가까이 뛰었지만, 5년 주가 수익률은 20%를 겨우 넘긴 수준이다. 계속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했다는 뜻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전통산업의 한계를 딛고 중장기적으로 주가를 재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동박 사업이 당장 내년부터 수익을 내면서 주가 재평가 재료가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소 관련주로 묶이는 것도 주가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고려아연의 행보는 그동안 에너지를 단순 제공받아 활용하기만 하던 제조업체들이 친환경에너지를 직접 확보해 생존과 성장을 함께 추구하는 모습으로 해석된 것”이라며 “한국 제조업의 에너지 사업 진출 노력은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의 목표주가 평균은 68만2000원이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6개월 전 11.7배에서 13.6배로 오히려 높아진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평균은 물론 대부분 제조업체의 PER은 낮아졌기 때문이다. 신사업에 대한 구체적 투자계획 발표 등이 PER 상승을 이끄는 주가 재평가의 근거가 됐다는 얘기다.
고윤상 한국경제신문 기자 kys@hankyung.com
이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은 한국의 고려아연으로, ESG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투자자에게는 투자 기피 대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5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고려아연이 신재생에너지와 재활용(리사이클링), 2차전지 소재 등으로 신사업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최대 재생에너지업체 인수
고려아연은 1974년에 설립해 올해 48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회사다. 이름도 그대로다. 1990년 7월 증시에 상장했다. 30년이 넘는 증시의 오랜 터줏대감이다.
아연, 연, 금, 은 등을 제련해 판매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다. 제련 기술과 생산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아연이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아연은 자동차 및 가전제품 외장재나 건설용 철강재의 부식 방지용 도금 원료로 쓰인다.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원자재의 특성을 지닌다. 최근엔 러·우전쟁으로 국제 아연 가격이 오르면서 매출이 상승했고, 올해는 사상 처음 매출 10조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제련 사업은 전통적 산업이고 설비 산업인 만큼 확장성의 한계가 뚜렷하다. 주가도 그에 따라 움직인다. 올 들어 고려아연은 사업 영역을 신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재활용), 2차전지 소재(동박) 등으로 다양화한다는 내용의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내걸었다. 지난 50년간 이끌어온 제련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려는 포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8월 5일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임팩트의 미국 에너지 분야 투자 자회사 ‘한화H2에너지 USA’에 5% 지분을 넘긴다고 공시했다. 한화임팩트는 LNG가스터빈을 수소가스터빈으로 전환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4718억원을 조달하는 동시에 수소 등 신사업 분야에서 한화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계약이다.
이렇게 조달한 돈은 고려아연의 호주 재생에너지 투자에 활용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호주 최대 재생에너지업체 에퓨런(Epuron)을 약 3660억원에 인수하는 등 호주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 호주에 124MW 규모의 태양광발전단지를 운영 중이다. 또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와 협력해 그린수소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호주에서 그린수소를 생산, 국내로 수입하겠다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그린수소사업은 긴 시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한화그룹과의 협력이 시너지를 일으킬 뿐 아니라 사업 리스크를 낮추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2차전지 소재 투자 확대
또 다른 신사업은 2차전지 소재다. 고려아연은 2차전지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케이잼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2차전지 필수 소재로 전기차 시대를 맞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공격적 증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력과 공정상 어려움이 커 후발 주자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소재사업이기도 하다.
지분율 100% 자회사 케이잼은 올해 말 1차 생산능력 1.3만 톤을 갖출 예정이다. 최근에는 추가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동박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까지 1만7000톤을 추가해 총 3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기존 계획에 2026년까지 3만 톤을 추가 증설할 계획이다. 6만 톤은 현재 가격인 톤당 약 2000만원을 적용할 때 연 매출 1조2000억원 규모다. 동박 투자 금액만 총 7356억원 규모다. 본격적 수익 구간은 내년으로 예상된다. 수익이 나면 주가 재평가 기대가 높아질 수 있다.
지분율 35%의 자회사 켐코와 LG화학이 손잡고 전구체 합작법인(JV), ‘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만든 것도 2차전지 소재 사업의 하나다. 전구체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의 중간 원료다. 이 합작법인에서 생산한 전구체는 북미 핵심 수요처에 공급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의 투자금액은 1000억원이다. 켐코 지분율은 51%다.
최근엔 리사이클링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전자폐기물(E-scrap) 재활용업체 이그니오 홀딩스를 약 4324억원에 인수했다. 이그니오는 전자폐기물 재활용업계의 선두주자다. 전자폐기물에서 구리정광을 추출하는 독보적이고 검증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구리는 동박의 원료이기도 한 만큼 동박 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이그니오는 북미 전역에 2개의 공장, 6개의 허브를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차전지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도 진출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청사진이다.
중장기적 주가 재평가 기대
고려아연은 전통산업인 만큼 그동안 경기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는 주가 흐름을 보였다. 전형적인 박스권 주식이었다. 올 들어 지난 8월 중순까지 주가는 20% 가까이 뛰었지만, 5년 주가 수익률은 20%를 겨우 넘긴 수준이다. 계속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했다는 뜻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전통산업의 한계를 딛고 중장기적으로 주가를 재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동박 사업이 당장 내년부터 수익을 내면서 주가 재평가 재료가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소 관련주로 묶이는 것도 주가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고려아연의 행보는 그동안 에너지를 단순 제공받아 활용하기만 하던 제조업체들이 친환경에너지를 직접 확보해 생존과 성장을 함께 추구하는 모습으로 해석된 것”이라며 “한국 제조업의 에너지 사업 진출 노력은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의 목표주가 평균은 68만2000원이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6개월 전 11.7배에서 13.6배로 오히려 높아진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평균은 물론 대부분 제조업체의 PER은 낮아졌기 때문이다. 신사업에 대한 구체적 투자계획 발표 등이 PER 상승을 이끄는 주가 재평가의 근거가 됐다는 얘기다.
고윤상 한국경제신문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