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전경
여의도 증권가 전경
국내 주요 증권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관련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이 조성하는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와 별개로 대형 증권사들이 중소형사의 PF ABCP를 매입하는 최대 1조원 규모 ‘제2 채안펀드’를 만드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경쟁사 리스크를 떠안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각에선 “시장 안정을 위한 증권업계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형 증권사 ‘제2 채안펀드’ 논의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는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모여 제2 채안펀드 조성과 PF ABCP 매입 방안 등을 논의했다. 금투협은 지난 24일에도 나재철 금투협회장 주재로 국내 9개 증권사 사장단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대형사 5백억~1천억씩 갹출해 중소증권사 지원"…팔 비틀기 논란
회의에서는 대형 증권사들이 자금을 모아 중소형 증권사의 PF ABCP를 매입하는 방안을 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증권사들이 사별로 500억~1000억원가량을 지원해 최대 1조원의 자금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투자 수단을 두고 증권사 직접 매입과 펀드·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한 간접 매입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증권사들이 자사의 PF ABCP를 자체 자금으로 매입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구체적인 투자 금액과 수단을 논의하고 있으며 가급적 이번주 안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논의는 금융당국이 ‘50조원+α’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한 뒤 업계에 ‘민간에서도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 뒤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우량 ABCP와 기업어음(CP) 등은 시장 자체적으로 소화해줘야 단기자금 시장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며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투자업계에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도덕적 해이·배임 논란 만만찮아

증권업계에서는 이 같은 방안을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중소형사의 PF 대출 부실이 확산할 경우 업계 전반에 피해가 갈 수 있으므로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증권사들이 지난해까지 부동산 PF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만큼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어야 당국의 개입 명분이 생긴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시장 논리를 왜곡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내던 중소형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고 대형사가 이를 돕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업계 전반에 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소형사의 리스크를 대형사가 떠안는 것은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경쟁사인 중소형사를 돕기 위해 리스크를 떠안는 방안을 승인하면 대표이사가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형 증권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도 자금을 출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투협 관계자는 “전체 증권사가 출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형사 중심으로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단기자금 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시행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날부터 한국증권금융은 자금난에 처한 증권사에 ‘3조원+α’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증권금융은 증권사와의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증권 담보대출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할 방침이다. 당국에선 이날 30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이 지원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7일부터는 산업은행에서 ‘2조원+α’ 규모의 증권사 CP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에 예외적으로 금융사 대상 CP까지 매입 대상을 확대하는 만큼 증권사 자구 노력(확약서) 등을 전제로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