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0년 가까이 유지해 온 대규모 금융완화(유동성 공급) 정책을 일부 수정했다. 내년 4월 퇴임을 앞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 줬지만 금융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중국이 4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도 아시아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

통화 완화폭 축소한 日

급격한 엔저·高물가 못견딘 日…10년 고수한 '금융완화' 결국 수정
일본은행은 20일 기준금리인 단기금리를 연 -0.1%, 장기금리를 연 0%로 동결했다. 그러면서 장기금리 변동폭을 기존 ‘±0.25%’에서 ‘±0.5%’로 확대했다. 일본의 단기금리는 1일 만기 콜금리, 장기금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다.

일본은행은 국채를 시장에서 매매하는 방식으로 장기금리 변동폭을 조절한다. 최근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가 연 0.25% 수준이라는 점에서 변동폭 확대는 곧 금리 인상으로 해석된다.

일본은행은 이번 조치가 긴축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기존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완화 폭 축소’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 회계연도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의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월 7조3000억엔(약 71조원)에서 9조엔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잇달아 올리면서 일본도 금리 인상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일본은행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는 등 금융 환경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장기금리 변동폭 확대 배경을 설명했다. 급격한 엔화 약세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와 기업이 타격을 받자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엔화 환율은 지난 10월 21일 32년 만의 최고인 달러당 151엔까지 상승(엔화 약세)했다. 엔저로 수입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3.6% 올랐다. 40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일본은행의 정책 변경으로 엔화 환율은 이날 장중 3.5% 급락했다. 닛케이225지수는 2.46%, 홍콩 항셍지수는 1.33% 하락했다. 한국 코스피지수도 0.8% 내렸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내년 4월 이후 초저금리 및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인 2013년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대규모 완화 정책을 변경하는 것이다. 완화 정책의 주역인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8일까지다. 차기 총재 후보로 꼽히는 야마구치 히로히데 전 일본은행 부총재는 최근 “일본은행은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전환하고 내년에 장기금리를 올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中은 유동성 공급 늘려

중국 인민은행은 중국 특유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12월 기준)가 1년 만기 연 3.65%, 5년 만기는 연 4.30%로 집계됐다고 이날 발표했다. LPR은 18개 시중은행의 최우량 고객 대상 대출 금리의 평균치다. 실제로는 인민은행이 각종 정책 수단을 통해 결정한다. 1년 만기 LPR은 일반 대출, 5년 만기는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다. 인민은행은 올해 1년 만기 LPR을 1월과 8월 두 차례, 5년 만기는 1월과 5월, 8월 세 차례 인하했다.

중국의 경기 하강 추세를 감안하면 기준금리 인하 등의 적극적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인민은행은 미국과의 금리 차이 확대 우려에 동결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민은행은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연말연시 자금 수요에 대비해 유동성 공급은 늘리고 있다. 이날 공개시장운영으로 1440억위안(약 27조원)을 풀었다. 전날 840억위안에 이어 이틀 연속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도쿄=정영효/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