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통신 이어 식품株도…官 압박에 와르르
은행, 통신, 식품 등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종목들은 꾸준한 실적을 내지만 상대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데 한계가 있는 주식으로 꼽혀왔다. 정부가 주기적으로 개입해 요금 인하 등을 요구하는 ‘관치 리스크’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도 정부가 이들 산업을 공공재로 지목하거나 물가 잡기를 위해 가격 통제에 나서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반짝 상승폭’ 모두 반납

27일 하이트진로는 3.02% 내린 2만4100원에 마감했다. 롯데칠성(-0.88%), 무학(-1.62%) 등 다른 소주 관련주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GS(-2.61%), SK이노베이션(-2.06%) 등 정유주도 동반 하락했다. 전날 정부가 소주값과 기름 가격 인하를 위해 원가 공개 등을 추진한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

‘관치 리스크’로 주가가 급락한 것은 음식료와 기름 업종이 처음이 아니다. 연초 호실적과 배당 확대 기대감으로 올랐던 은행주는 정부가 예대마진(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 축소를 주문하면서 올초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KB금융은 최근 한 달간 12%, 신한지주는 14% 급락했다.

지난해 경기 방어주로 부각되며 상승세를 탄 통신주도 지난달 하순부터 급락세로 전환했다. 정부의 통신 요금 인하 요구가 악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KT는 최고경영자(CEO) ‘낙하산 논란’까지 겹치면서 최근 한 달 새 15% 급락해 2014년 초 주가로 되돌아왔다. SK텔레콤도 같은 기간 6% 하락했다. 정유주도 최근 한 달 새 낙폭이 컸다. GS는 10.6%, SK이노베이션은 10.4% 떨어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은행, 통신 등의 업종은 주가가 오를 만하면 정치권발 규제 리스크가 발생하며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간 주가 제자리

은행 통신 정유주는 장기적으로도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정부의 요금 인하 압박 등으로 배당 확대 기대감이 낮아졌다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은행 통신 정유주는 실적 성장에 대한 기대가 낮은 대신 배당수익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었다. 경기 침체 기간에도 일정한 실적을 내며 배당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 투자의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관치 리스크에 노출된 종목들의 주가 회복은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은행 통신 등에 대해 신규 사업자 진입 등을 통한 경쟁 촉진을 예고함에 따라 실적 성장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주는 단기 조정이 일단락됐지만 상승세도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공공재 성격이 강한 주식에 투자할 때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에 더해 관치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는 회사는 주주의 이익이 온전히 보호되기 어렵다”며 “단순히 밸류에이션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은행, 통신주 등에 투자할 경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성상훈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