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월가 "겁먹은 파월, 긴축은 끝"…하지만 주가 못 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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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수 뉴욕 금융시장 요약>
▶주가 혼조=S&P500 -0.70%, 나스닥 +0.05%
▶채권 금리 폭락=미 국채 10년물 3.474%(-21.7bp)
▶유가 폭락=WTI 배럴당 67.61달러(-5.2%)
미 정부의 개입으로 안정을 되찾는 듯했던 뉴욕 증시의 투자 심리가 다시 흔들렸습니다. 미국의 은행 위기는 수습되나 했는데, 유럽에서 크레디 스위스 주가가 한때 30% 폭락하며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된 탓입니다. BNP파리바, 코메르츠방크, 유니크레디트 등 다른 유럽 은행도 동반 폭락했습니다. ① 크레디 스위스 무너지나
크레디 스위스는 '글로벌하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의 하나입니다. 무너진다면 실리콘밸리 은행(SVB)과는 충격의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자산만 5300억 스위스 프랑(5730억 달러)으로 세 배에 가깝습니다. 크레디 스위스는 수년간의 잘못된 투자와 손실로 인해 예금 이탈이 발생해왔습니다.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지적을 받고 작년 결산보고서를 늦게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크레디 스위스의 대주주(지분율 9.9%)인 사우디 국립은행(SNB)의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이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크레디 스위스에 대한 추가 증자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게 폭락을 촉발했습니다. 법 규정 때문에 다른 은행 지분을 10% 이상 살 수 없다는 얘기였지요. 이에 크레디 스위스의 부도 위험을 헤지하는 1년짜리 크레딧 디폴트 스왑(CDS)은 거의 1000bp(10%)까지 치솟았습니다. 유럽 증시의 주요 지수가 3% 안팎 폭락했고 각국의 국채 금리는 30bp가량 급락했습니다.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죠. 바클레이스는 "예측하기 너무 어려운 위험과 통화정책의 제약적인 경로"에 대해 언급하면서 "유럽 은행에 대한 전망이 단기적으로 불확실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 국채 10년물은 아침 한때 20bp 가까이 내린 3.50%, 2년물은 30bp가량 내려 다시 3.97%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미국에서 시작된 은행 발 위기가 어디론가 감염될 수 있다고 계속 걱정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오전 8시 30분부터 각종 경제 지표가 쏟아졌습니다.
② 소매판매 둔화
2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0.4% 감소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월가 예상과 같았습니다. 이건 경기 둔화를 원하는 Fed에게는 매우 반가운 수치입니다. 시장을 놀라게 했던 1월 수치는 기존 3.0% 증가에서 3.2% 증가로 더 높게 수정됐습니다. 12월 1.1% 감소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월 소매판매 감소에는 자동차 -1.8%, 가구 -2.5%, 백화점 -4%, 외식 -2.2%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자동차를 제외한 2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1% 감소하는 데 그쳤고, 자동차와 휘발유를 빼면 전월과 같았습니다. 특히 자동차 휘발유와 건축자재, 외식 등 변동성이 큰 요인을 제외한 '통제 그룹' 항목의 경우 1월 2.3% 상승에 이어 2월에도 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국내총생산(GDP) 계산에 들어가는 '통제 그룹'은 0.5% 상승해 2개월 연속 증가했다. 전년 대비로는 전월 6.6%에서 2월 6.4%로 둔화하여 2021년 1월 이후 가장 느리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는 빠른 증가 속도다. 이는 소비자 지출의 근본적 힘을 나타낸다"라고 밝혔습니다. ③ 생산자물가 큰 폭 하락
2월 생산자물가(PPI)는 한 달 전보다 0.1% 하락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예상(0.3% 상승)보다 크게 낮은 것이죠. 1월 수치도 0.7% 상승에서 0.3% 상승으로 하향 수정됐습니다. 치솟기만 하던 계란 값 급락으로 최종 상품 수요가 0.2% 감소하면서 음식 물가가 2.2%나 떨어진 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년 동기로는 2월 4.6%(1월 5.7%) 올랐습니다. 에너지와 음식물을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 대비 0.2% 상승(1월 0.5% 상승)했고 전년 동기보다는 4.4%(1월 5%) 올랐습니다. BMO는 "PPI의 약세는 원자재 가격 둔화 추세를 반영한다. 시간이 흐르면 소비자 물가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부에선 도소매 업체의 마진을 나타내는 '트레이딩 서비스'(trading service) 물가가 1월 1.1% 하락에 이어 2월에도 0.8% 떨어진 걸 지목합니다. ING는 "인플레이션 둔화에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기업 마진이 위협을 받는 신호"라고 풀이했습니다.
이외에 뉴욕 연방은행이 발표하는 3월 엠파이어 제조업 지수는 전월보다 18.8포인트 떨어진 -24.6을 기록했습니다. 예상(-7.8)보다 크게 악화했습니다. 1월 기업 재고는 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1월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입니다. 전미주택건설협회(NAHB)의 3월 주택시장 지수(HMI)는 전월보다 2포인트 높은 44로 집계됐고, 지난주 모기지 신청 건수는 7.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경기와 물가 둔화 조짐이 나타났고, Fed에겐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라스무센은 "오늘 데이터는 인플레이션에 관한 한 반가운 신호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크레디 스위스 공포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이미 큰 폭으로 하락하던 2년물 금리는 이들 데이터가 발표된 뒤 추가 하락했습니다. 한때 50bp가 넘게 내리면서 3.705%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오후 4시께 2년물은 34.6bp 내린 3.904%에 거래됐고, 10년물의 경우 21.7bp 내린 3.474%를 기록했습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Fed 워치 시장에서의 3월 동결 예상은 한때 70%까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50% 수준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동결할지, 25bp를 올릴지 반반 확률이라는 것이죠. 스탠다드차타드의 스테픈 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나는 다음주 Fed의 결정이 그 시점에서 은행 부문과 금융시장에 얼마나 많은 혼란이 남아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리라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Fed의 최종금리 예상은 지금(4.5~4.75%)과 같은 4.7%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6월부터 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연말에는 100bp를 내릴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투자자들이 광범위한 금융 혼란에 대한 우려가 퍼진 뒤 Fed의 금리 인상 주기가 끝났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썼습니다. 피델리티의 줄리언 티머 전략가도 "시장 금리와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의 가격 변화를 보면 시장은 이제 Fed의 긴축이 끝났거나, 다음주 25bp 인상이 마지막이라고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TS롬바드의 다리오 퍼킨스 이코노미스트는 "고객들은 Fed가 금리 인상을 멈추면 다시 인상을 재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건 경제 상황이 더 금리 인상을 감내할 수 없었을 때(경기 침체) 그렇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많이 이들이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Fed의 동결 기대, 더 나아가 긴축 중단과 금리 인하 기대까지 강해졌지만,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1.1~1.4%의 큰 폭 하락세로 출발한 시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 폭을 키웠습니다. 다우와 S&P500 지수는 오후 1시께 하락 폭이 2%를 넘었습니다.
금융위기, 그리고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탓입니다. T로우프라이스는 "은행 혼란은 경기 침체의 가능성을 높인다. 은행들은 대출할 때 훨씬 더 위험을 회피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경제에 더 많은 역풍을 일으킬 것이다. 경제는 이미 취약하다"라고 밝혔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은행들의 예금 인출 사태를 지적하며 올해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춰 1.2%로 수정했습니다. SVB 사태와 관련해 "중소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40% 정도 줄일 것으로 가정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노랜딩 시나리오를 처음 제기했던 아폴로 에셋의 토스텐 슬록 이코노미스트는 "사실이 바뀌면 내 견해도 바뀐다. 금융사고가 발생하여 노랜딩은 신용 경색에 따른 하드랜딩(경착륙)으로 접어들고 있다. 소규모 은행은 미국의 전체 대출의 30%를 차지하는데, 이제 자신들의 대차대조표를 돌보는데 몇 분기를 소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Fed가 올해 말에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더라도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해짐을 의미할 것이다. Fed는 다음주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이미 장단기 금리 모두에서 정점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습니다. 전날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설립자는 "SVB 파산은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탄광 속 카나리아'와 같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Fed가 공격적 금리 인상에 나서며 시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고강도 긴축 여파가 이제 나타나며 은행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일은 부채 사이클에서 거품이 꺼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고 부채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업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도 주주 서한에서 "더 많은 발작과 은행 폐쇄가 다가올 수 있다. 쉬운 돈과 규제 완화의 결과가 미 지역은행 전반에 걸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크레디 스위스가 붕괴한다면 '리먼 모먼트'(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같은 순간)가 될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크레디 스위스와 관련 ▲Fed가 미 재무부와 함께 미국의 관련 위험 노출 정도를 점검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고 ▲BNP 파리파는 더는 크레디 스위스와 관련된 거래를 맺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또 ▲S&P가 제2의 SVB로 꼽히는 퍼스트 리퍼블릭의 투자등급을 정크로 강등하면서 지역은행 주가가 하락 폭을 키웠습니다. 전날 급반등했던 퍼스트 리퍼블릭과 팩웨스트 주가가 각각 21%, 12% 이상 하락했습니다. 이런 경기 침체 우려를 가장 잘 반영한 게 유가입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5.2% 떨어진 67.61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 2021년 12월 3일 이후 최저가로 1년 4개월여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을 내줬습니다. 브렌트유도 5% 가까이 급락해 배럴당 73달러대로 밀려났습니다. 반면 안전자산인 금과 달러는 수요가 몰리며 똑같이 1.1% 올랐습니다. 재밌는 건 통상 안전자산으로 꼽혀온 스위스프랑이 미국 달러 대비 2% 이상 하락한 것입니다. 크레디 스위스의 영향이지요. 불안한 시장에 변곡점이 생긴 건 오후 1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스위스 금융당국이 안정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고, 오후 3시께 스위스 국립은행(SNB)과 금융감독청(FINMA)은 공동 성명을 내고 "크레디 스위스는 은행의 자본 및 유동성 요건을 충족한다. 필요한 경우 우리는 은행에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주가와 채권 가치는 지난 며칠간 (SVB 사태로 인한) 시장 반응에 영향을 받았지만, 감독 당국은 크레디 스위스가 자본 및 유동성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는 크레디 스위스에 자본을 투입한다는 뜻이 아니라 담보를 받고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뜻으로 현재 같은 상황에서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일부 지적이 나왔습니다. 크레디 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에만 전체 예금의 37%인 1230억 스위스프랑(1330억 달러)이 유출됐고 연간 손실만 73억 스위스 프랑(79억 달러)에 달한 탓입니다.
주요 지수는 하락 폭을 크게 줄였습니다. 결국, 다우는 0.87%, S&P500 지수는 0.7% 내렸지만 나스닥은 0.05% 강보합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투자자들은 에너지(-5.42%), 소재(-3.28%), 금융(-2.91%), 산업(-2.51%) 등 경기 민감 주를 투매했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업종입니다. 금융주 중에선 JP모건과 모건스탠리가 각각 4%, 5% 이상 하락하고, 웰스파고는 3% 이상 떨어졌습니다. 씨티은행과 골드만삭스도 각각 5%, 3% 이상 밀렸습니다. 크레디 스위스가 무너지면 미국 은행도 흔들릴까요? 웰스파고는 마이크 마요 애널리스트는 "크레디 스위스 이슈는 이미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 은행들은 잠재적 사태에 준비해왔을 것이고, 만약 어떤 일이 터지면 JP모건이 가장 강할 것이고, 씨티도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크레디 스위스 관련 익스포져는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에너지 주도 직격탄을 맞았죠. 엑손모빌은 5% 하락했고 핼리버튼은 9.6%, 마라톤 4%, EQT 6.1% 하락했습니다.
반면 금리 하락의 혜택을 받는 기술주는 상승한 주식이 많았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1.78%) 메타(1.92%) 아마존(1.39%) 등 빅테크가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빅테크 주식은 안전자산으로 취급받으면서 매수가 몰렸다"라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내일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의 3월 통화정책회의입니다. 그동안 ECB는 3월 50bp 인상을 공언해 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워낙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레디 스위스 사태가 터지자 전 ECB 집행 이사였던 로렌조 비니 스마기 소시에테 제네랄 회장은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시장 불안을 더 높일 것이란 얘기죠. 실제 시장에서는 어제까지는 50bp를 올릴 것으로 봤지만 오늘 이를 30bp 수준까지 낮췄습니다. ECB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건 중앙은행가들이 지금의 은행 발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ECB의 결정을 보고 다음주 Fed의 FOMC 결과를 유추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오늘 로이터 통신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ECB는 은행 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폭의 금리 인상(50bp)을 할 것 같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주가 혼조=S&P500 -0.70%, 나스닥 +0.05%
▶채권 금리 폭락=미 국채 10년물 3.474%(-21.7bp)
▶유가 폭락=WTI 배럴당 67.61달러(-5.2%)
미 정부의 개입으로 안정을 되찾는 듯했던 뉴욕 증시의 투자 심리가 다시 흔들렸습니다. 미국의 은행 위기는 수습되나 했는데, 유럽에서 크레디 스위스 주가가 한때 30% 폭락하며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된 탓입니다. BNP파리바, 코메르츠방크, 유니크레디트 등 다른 유럽 은행도 동반 폭락했습니다. ① 크레디 스위스 무너지나
크레디 스위스는 '글로벌하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의 하나입니다. 무너진다면 실리콘밸리 은행(SVB)과는 충격의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자산만 5300억 스위스 프랑(5730억 달러)으로 세 배에 가깝습니다. 크레디 스위스는 수년간의 잘못된 투자와 손실로 인해 예금 이탈이 발생해왔습니다.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지적을 받고 작년 결산보고서를 늦게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크레디 스위스의 대주주(지분율 9.9%)인 사우디 국립은행(SNB)의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이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크레디 스위스에 대한 추가 증자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게 폭락을 촉발했습니다. 법 규정 때문에 다른 은행 지분을 10% 이상 살 수 없다는 얘기였지요. 이에 크레디 스위스의 부도 위험을 헤지하는 1년짜리 크레딧 디폴트 스왑(CDS)은 거의 1000bp(10%)까지 치솟았습니다. 유럽 증시의 주요 지수가 3% 안팎 폭락했고 각국의 국채 금리는 30bp가량 급락했습니다.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죠. 바클레이스는 "예측하기 너무 어려운 위험과 통화정책의 제약적인 경로"에 대해 언급하면서 "유럽 은행에 대한 전망이 단기적으로 불확실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 국채 10년물은 아침 한때 20bp 가까이 내린 3.50%, 2년물은 30bp가량 내려 다시 3.97%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미국에서 시작된 은행 발 위기가 어디론가 감염될 수 있다고 계속 걱정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오전 8시 30분부터 각종 경제 지표가 쏟아졌습니다.
② 소매판매 둔화
2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0.4% 감소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월가 예상과 같았습니다. 이건 경기 둔화를 원하는 Fed에게는 매우 반가운 수치입니다. 시장을 놀라게 했던 1월 수치는 기존 3.0% 증가에서 3.2% 증가로 더 높게 수정됐습니다. 12월 1.1% 감소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월 소매판매 감소에는 자동차 -1.8%, 가구 -2.5%, 백화점 -4%, 외식 -2.2%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자동차를 제외한 2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1% 감소하는 데 그쳤고, 자동차와 휘발유를 빼면 전월과 같았습니다. 특히 자동차 휘발유와 건축자재, 외식 등 변동성이 큰 요인을 제외한 '통제 그룹' 항목의 경우 1월 2.3% 상승에 이어 2월에도 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국내총생산(GDP) 계산에 들어가는 '통제 그룹'은 0.5% 상승해 2개월 연속 증가했다. 전년 대비로는 전월 6.6%에서 2월 6.4%로 둔화하여 2021년 1월 이후 가장 느리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는 빠른 증가 속도다. 이는 소비자 지출의 근본적 힘을 나타낸다"라고 밝혔습니다. ③ 생산자물가 큰 폭 하락
2월 생산자물가(PPI)는 한 달 전보다 0.1% 하락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예상(0.3% 상승)보다 크게 낮은 것이죠. 1월 수치도 0.7% 상승에서 0.3% 상승으로 하향 수정됐습니다. 치솟기만 하던 계란 값 급락으로 최종 상품 수요가 0.2% 감소하면서 음식 물가가 2.2%나 떨어진 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년 동기로는 2월 4.6%(1월 5.7%) 올랐습니다. 에너지와 음식물을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 대비 0.2% 상승(1월 0.5% 상승)했고 전년 동기보다는 4.4%(1월 5%) 올랐습니다. BMO는 "PPI의 약세는 원자재 가격 둔화 추세를 반영한다. 시간이 흐르면 소비자 물가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부에선 도소매 업체의 마진을 나타내는 '트레이딩 서비스'(trading service) 물가가 1월 1.1% 하락에 이어 2월에도 0.8% 떨어진 걸 지목합니다. ING는 "인플레이션 둔화에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기업 마진이 위협을 받는 신호"라고 풀이했습니다.
이외에 뉴욕 연방은행이 발표하는 3월 엠파이어 제조업 지수는 전월보다 18.8포인트 떨어진 -24.6을 기록했습니다. 예상(-7.8)보다 크게 악화했습니다. 1월 기업 재고는 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1월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입니다. 전미주택건설협회(NAHB)의 3월 주택시장 지수(HMI)는 전월보다 2포인트 높은 44로 집계됐고, 지난주 모기지 신청 건수는 7.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경기와 물가 둔화 조짐이 나타났고, Fed에겐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라스무센은 "오늘 데이터는 인플레이션에 관한 한 반가운 신호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크레디 스위스 공포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이미 큰 폭으로 하락하던 2년물 금리는 이들 데이터가 발표된 뒤 추가 하락했습니다. 한때 50bp가 넘게 내리면서 3.705%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오후 4시께 2년물은 34.6bp 내린 3.904%에 거래됐고, 10년물의 경우 21.7bp 내린 3.474%를 기록했습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Fed 워치 시장에서의 3월 동결 예상은 한때 70%까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50% 수준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동결할지, 25bp를 올릴지 반반 확률이라는 것이죠. 스탠다드차타드의 스테픈 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나는 다음주 Fed의 결정이 그 시점에서 은행 부문과 금융시장에 얼마나 많은 혼란이 남아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리라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Fed의 최종금리 예상은 지금(4.5~4.75%)과 같은 4.7%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6월부터 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연말에는 100bp를 내릴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투자자들이 광범위한 금융 혼란에 대한 우려가 퍼진 뒤 Fed의 금리 인상 주기가 끝났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썼습니다. 피델리티의 줄리언 티머 전략가도 "시장 금리와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의 가격 변화를 보면 시장은 이제 Fed의 긴축이 끝났거나, 다음주 25bp 인상이 마지막이라고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TS롬바드의 다리오 퍼킨스 이코노미스트는 "고객들은 Fed가 금리 인상을 멈추면 다시 인상을 재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건 경제 상황이 더 금리 인상을 감내할 수 없었을 때(경기 침체) 그렇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많이 이들이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Fed의 동결 기대, 더 나아가 긴축 중단과 금리 인하 기대까지 강해졌지만,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1.1~1.4%의 큰 폭 하락세로 출발한 시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 폭을 키웠습니다. 다우와 S&P500 지수는 오후 1시께 하락 폭이 2%를 넘었습니다.
금융위기, 그리고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탓입니다. T로우프라이스는 "은행 혼란은 경기 침체의 가능성을 높인다. 은행들은 대출할 때 훨씬 더 위험을 회피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경제에 더 많은 역풍을 일으킬 것이다. 경제는 이미 취약하다"라고 밝혔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은행들의 예금 인출 사태를 지적하며 올해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춰 1.2%로 수정했습니다. SVB 사태와 관련해 "중소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40% 정도 줄일 것으로 가정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노랜딩 시나리오를 처음 제기했던 아폴로 에셋의 토스텐 슬록 이코노미스트는 "사실이 바뀌면 내 견해도 바뀐다. 금융사고가 발생하여 노랜딩은 신용 경색에 따른 하드랜딩(경착륙)으로 접어들고 있다. 소규모 은행은 미국의 전체 대출의 30%를 차지하는데, 이제 자신들의 대차대조표를 돌보는데 몇 분기를 소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Fed가 올해 말에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더라도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해짐을 의미할 것이다. Fed는 다음주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이미 장단기 금리 모두에서 정점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습니다. 전날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설립자는 "SVB 파산은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탄광 속 카나리아'와 같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Fed가 공격적 금리 인상에 나서며 시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고강도 긴축 여파가 이제 나타나며 은행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일은 부채 사이클에서 거품이 꺼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고 부채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업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도 주주 서한에서 "더 많은 발작과 은행 폐쇄가 다가올 수 있다. 쉬운 돈과 규제 완화의 결과가 미 지역은행 전반에 걸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크레디 스위스가 붕괴한다면 '리먼 모먼트'(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같은 순간)가 될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크레디 스위스와 관련 ▲Fed가 미 재무부와 함께 미국의 관련 위험 노출 정도를 점검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고 ▲BNP 파리파는 더는 크레디 스위스와 관련된 거래를 맺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또 ▲S&P가 제2의 SVB로 꼽히는 퍼스트 리퍼블릭의 투자등급을 정크로 강등하면서 지역은행 주가가 하락 폭을 키웠습니다. 전날 급반등했던 퍼스트 리퍼블릭과 팩웨스트 주가가 각각 21%, 12% 이상 하락했습니다. 이런 경기 침체 우려를 가장 잘 반영한 게 유가입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5.2% 떨어진 67.61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 2021년 12월 3일 이후 최저가로 1년 4개월여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을 내줬습니다. 브렌트유도 5% 가까이 급락해 배럴당 73달러대로 밀려났습니다. 반면 안전자산인 금과 달러는 수요가 몰리며 똑같이 1.1% 올랐습니다. 재밌는 건 통상 안전자산으로 꼽혀온 스위스프랑이 미국 달러 대비 2% 이상 하락한 것입니다. 크레디 스위스의 영향이지요. 불안한 시장에 변곡점이 생긴 건 오후 1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스위스 금융당국이 안정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고, 오후 3시께 스위스 국립은행(SNB)과 금융감독청(FINMA)은 공동 성명을 내고 "크레디 스위스는 은행의 자본 및 유동성 요건을 충족한다. 필요한 경우 우리는 은행에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주가와 채권 가치는 지난 며칠간 (SVB 사태로 인한) 시장 반응에 영향을 받았지만, 감독 당국은 크레디 스위스가 자본 및 유동성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는 크레디 스위스에 자본을 투입한다는 뜻이 아니라 담보를 받고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뜻으로 현재 같은 상황에서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일부 지적이 나왔습니다. 크레디 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에만 전체 예금의 37%인 1230억 스위스프랑(1330억 달러)이 유출됐고 연간 손실만 73억 스위스 프랑(79억 달러)에 달한 탓입니다.
주요 지수는 하락 폭을 크게 줄였습니다. 결국, 다우는 0.87%, S&P500 지수는 0.7% 내렸지만 나스닥은 0.05% 강보합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투자자들은 에너지(-5.42%), 소재(-3.28%), 금융(-2.91%), 산업(-2.51%) 등 경기 민감 주를 투매했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업종입니다. 금융주 중에선 JP모건과 모건스탠리가 각각 4%, 5% 이상 하락하고, 웰스파고는 3% 이상 떨어졌습니다. 씨티은행과 골드만삭스도 각각 5%, 3% 이상 밀렸습니다. 크레디 스위스가 무너지면 미국 은행도 흔들릴까요? 웰스파고는 마이크 마요 애널리스트는 "크레디 스위스 이슈는 이미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 은행들은 잠재적 사태에 준비해왔을 것이고, 만약 어떤 일이 터지면 JP모건이 가장 강할 것이고, 씨티도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크레디 스위스 관련 익스포져는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에너지 주도 직격탄을 맞았죠. 엑손모빌은 5% 하락했고 핼리버튼은 9.6%, 마라톤 4%, EQT 6.1% 하락했습니다.
반면 금리 하락의 혜택을 받는 기술주는 상승한 주식이 많았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1.78%) 메타(1.92%) 아마존(1.39%) 등 빅테크가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빅테크 주식은 안전자산으로 취급받으면서 매수가 몰렸다"라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내일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의 3월 통화정책회의입니다. 그동안 ECB는 3월 50bp 인상을 공언해 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워낙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레디 스위스 사태가 터지자 전 ECB 집행 이사였던 로렌조 비니 스마기 소시에테 제네랄 회장은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시장 불안을 더 높일 것이란 얘기죠. 실제 시장에서는 어제까지는 50bp를 올릴 것으로 봤지만 오늘 이를 30bp 수준까지 낮췄습니다. ECB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건 중앙은행가들이 지금의 은행 발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ECB의 결정을 보고 다음주 Fed의 FOMC 결과를 유추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오늘 로이터 통신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ECB는 은행 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폭의 금리 인상(50bp)을 할 것 같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