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 따르면요"…여의도 증권가도 'AI 홀릭'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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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답변을 리포트에…표지도 AI가 그린 그림
애널리스트들이 달라졌다…"AI와 경쟁 아닌 협업해야"
애널리스트들이 달라졌다…"AI와 경쟁 아닌 협업해야"
"챗GPT(ChatGPT)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 공정별 칩개발 비용을 확인해 보면, 28나노미터 기준으로 수백만 달러에서 천만달러 수준이며, 이보다 선단 공정에 해당하는 14나노미터 기준으로는 수천만~수억달러 수준이다." (한국IR협의회, 김경민 애널리스트)
최근 증권사 리포트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최근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에서 발간한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종목 분석 리포트'에서 끌어온 글입니다. 이 리포트를 쓴 김경민 연구원은 작년 초까지 하나증권에서 반도체 업종을 분석했다가, 지금은 IR협의회로 적을 옮겨 각종 중소형주들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올 들어 내놓은 리포트들을 보면 독특한 점이 눈에 띄는데요. 챗GPT로부터 얻은 답변을 리포트에 적극 반영한단 겁니다.
김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챗GPT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 공정별 칩 개발 비용'을 짚었습니다. 반도체 신규 개발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반도체 설계 시 복잡도가 증가한 데다 연구개발 인력의 추가 확보가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공지능(AI) 수요의 성장동력'을 두고 챗GPT의 답변을 인용해 "딥 러닝의 발전, 스마트기기의 증가, 빅데이터 분석 수요, 자율주행 시스템의 성장, 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 등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리포트의 적지 않은 비중을 AI 챗봇에 내주고, 그 출처도 유관 연구기관이나 외신 등이 아닌 '챗GPT'로 분명히 표기한 겁니다.
아직은 호기심에 더 가깝겠지만, 이처럼 AI를 보조지표로 삼고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의 리포트들만 봐도 애널리스트들의 다양한 시도를 체감할 수 있는데요.
리딩투자증권의 곽병열, 유성만 연구원은 '챗GPT, 새로운 기회와 투자전략'이란 보고서를 내면서, 표지 그림에 AI 툴을 활용했습니다. 사용자 지시를 받아서 그림을 그려주는 생성 AI 서비스인 '달리'(DALL-E)를 활용한 것이었는데요. 명화 '키스' 등으로 유명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스타일로 2023년의 여의도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달 초엔 챗GPT를 활용해 주식 리서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안내서가 발간돼 화제를 몰았었죠. IBK투자증권의 김종영 연구원은 44쪽 분량의 '챗GPT를 활용한 리서치 방법론과 활용사례 분석' 리포트를 내고 챗GPT로 자료 요약, 재무자료 수집, 주가 수익률 통계 분석, 투자심리 분석, 시계열 모델 분석,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구성 등을 하는 방법을 소개했죠. 생성 AI에 입력할 명령어(키워드)를 모아서 제시해 주기도 했습니다. 가령 기업 실적발표 이후 수익률을 알고 싶다면, '[연도]년 [숫자]분기부터 [연도]년 [숫자]분기까지 [기업명] 실적 발표 시점과 이후 [기간] 동안 수익률도 알려줘'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식입니다.
사람 같은 챗봇에 모두가 압도된 것일까요. 작년 말 처음 출시된 챗GPT는 출시 두 달 만에 월간 활성사용자(MAU) 1억명을 기록했습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보다도 빠른 역대 최고속 성장세입니다. 2019년부터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에 꾸준히 투자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올 초 수십억달러 규모 투자계획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세상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는데요. 오픈AI는 최근 챗GPT에 적용된 GPT-3.5보다 더 똑똑한 버전 GPT-4를 내놓았습니다. 새 버전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까지 여러 데이터 형태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챗GPT이 중요한 업무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식간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화해서 요약글이나 보고서 형태로 보여주니, 단순노동의 많은 부분이 챗봇으로 대체된단 것입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챗GPT를 활용하면 효율성이 높아지고 단순 검색이 줄어든다"며 "아직 도입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VBA 기초와 적정 수준의 프로그램 언어만 이해하고 있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코딩도구 '코파일럿'으로 단순 반복 엑셀 업무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KB증권의 어느 연구원은 "생소한 분야에 대한 산업 리포트를 쓸 때 과거 논문들을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챗GPT를 쓰고 있다. 질문에 출처와 요약도 같이 요구하면 수시간을 들여서 정리했어야 할 게 몇초만에 정리가 된다"며 "시간 절약에 정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챗GPT를 무시하거나 두려워할 게 아니라 무궁무진한 활용의 영역"이라고도 했습니다.
유성만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엇이든 콘텐츠의 시작은 자료 수집인데, 그 단계를 챗GPT가 대체하니까 사실상 보조연구원(RA)를 옆에 둔 느낌"이라며 "향후 최신 데이터 반영만 된다면, 스몰캡까지는 아니어도 데이터들이 많이 축적돼 있는 라지캡(시총 대형주)에 한해선 리포트 작성 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RA가 설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챗GPT가 때때로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만큼, 업무 활용은 시기상조란 이야기도 들립니다.
미래에셋증권 한 연구원은 "재무데이터 수치를 믿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리포트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잠깐 활용하는 정도"라며 "최근 냈던 리포트들을 기준으로 보면 챗GPT의 지분은 개당 약 1%로 아직까진 미미하다"고 했습니다. 한화투자증권의 한 연구원도 "아직까진 직접 데이터를 손 보고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며 "업무에 챗GPT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챗GPT는 경쟁의 대상일까요, 협업의 대상일까요? 아직까진 사람들의 시각이 두려움과 설렘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MLIV Pulse(펄스) 설문조사 결과 금융업 종사자 292명 중 3분의 2 이상은 자신의 직업이 챗GPT의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AI 도구를 사용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12%만이 "사용한다"라고, 27%만이 "사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일단 챗GPT는 협업의 시선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기자와 나눈 짧은 대화를 공유합니다. 챗GPT에게 '애널리스트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애널리스트의 업무를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챗GPT는 "금융과 경제 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이 요구되므로 애널리스트란 직업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뉴스 수집과 데이터 분석, 보고서 형태의 요약, 맞춤형 고객서비스(CS) 등은 지원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간단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우리가 할테니, 그 시간에 더 복잡하고 중요한 업무에 집중하란 얘긴데요. 문득 챗GPT의 등장으로 업무 성과 스트레스가 더 심해질 수 있겠단 우려도 듭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최근 증권사 리포트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최근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에서 발간한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종목 분석 리포트'에서 끌어온 글입니다. 이 리포트를 쓴 김경민 연구원은 작년 초까지 하나증권에서 반도체 업종을 분석했다가, 지금은 IR협의회로 적을 옮겨 각종 중소형주들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올 들어 내놓은 리포트들을 보면 독특한 점이 눈에 띄는데요. 챗GPT로부터 얻은 답변을 리포트에 적극 반영한단 겁니다.
김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챗GPT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 공정별 칩 개발 비용'을 짚었습니다. 반도체 신규 개발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반도체 설계 시 복잡도가 증가한 데다 연구개발 인력의 추가 확보가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공지능(AI) 수요의 성장동력'을 두고 챗GPT의 답변을 인용해 "딥 러닝의 발전, 스마트기기의 증가, 빅데이터 분석 수요, 자율주행 시스템의 성장, 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 등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리포트의 적지 않은 비중을 AI 챗봇에 내주고, 그 출처도 유관 연구기관이나 외신 등이 아닌 '챗GPT'로 분명히 표기한 겁니다.
아직은 호기심에 더 가깝겠지만, 이처럼 AI를 보조지표로 삼고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의 리포트들만 봐도 애널리스트들의 다양한 시도를 체감할 수 있는데요.
리딩투자증권의 곽병열, 유성만 연구원은 '챗GPT, 새로운 기회와 투자전략'이란 보고서를 내면서, 표지 그림에 AI 툴을 활용했습니다. 사용자 지시를 받아서 그림을 그려주는 생성 AI 서비스인 '달리'(DALL-E)를 활용한 것이었는데요. 명화 '키스' 등으로 유명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스타일로 2023년의 여의도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달 초엔 챗GPT를 활용해 주식 리서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안내서가 발간돼 화제를 몰았었죠. IBK투자증권의 김종영 연구원은 44쪽 분량의 '챗GPT를 활용한 리서치 방법론과 활용사례 분석' 리포트를 내고 챗GPT로 자료 요약, 재무자료 수집, 주가 수익률 통계 분석, 투자심리 분석, 시계열 모델 분석,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구성 등을 하는 방법을 소개했죠. 생성 AI에 입력할 명령어(키워드)를 모아서 제시해 주기도 했습니다. 가령 기업 실적발표 이후 수익률을 알고 싶다면, '[연도]년 [숫자]분기부터 [연도]년 [숫자]분기까지 [기업명] 실적 발표 시점과 이후 [기간] 동안 수익률도 알려줘'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식입니다.
사람 같은 챗봇에 모두가 압도된 것일까요. 작년 말 처음 출시된 챗GPT는 출시 두 달 만에 월간 활성사용자(MAU) 1억명을 기록했습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보다도 빠른 역대 최고속 성장세입니다. 2019년부터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에 꾸준히 투자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올 초 수십억달러 규모 투자계획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세상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는데요. 오픈AI는 최근 챗GPT에 적용된 GPT-3.5보다 더 똑똑한 버전 GPT-4를 내놓았습니다. 새 버전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까지 여러 데이터 형태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챗GPT이 중요한 업무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식간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화해서 요약글이나 보고서 형태로 보여주니, 단순노동의 많은 부분이 챗봇으로 대체된단 것입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챗GPT를 활용하면 효율성이 높아지고 단순 검색이 줄어든다"며 "아직 도입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VBA 기초와 적정 수준의 프로그램 언어만 이해하고 있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코딩도구 '코파일럿'으로 단순 반복 엑셀 업무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KB증권의 어느 연구원은 "생소한 분야에 대한 산업 리포트를 쓸 때 과거 논문들을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챗GPT를 쓰고 있다. 질문에 출처와 요약도 같이 요구하면 수시간을 들여서 정리했어야 할 게 몇초만에 정리가 된다"며 "시간 절약에 정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챗GPT를 무시하거나 두려워할 게 아니라 무궁무진한 활용의 영역"이라고도 했습니다.
유성만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엇이든 콘텐츠의 시작은 자료 수집인데, 그 단계를 챗GPT가 대체하니까 사실상 보조연구원(RA)를 옆에 둔 느낌"이라며 "향후 최신 데이터 반영만 된다면, 스몰캡까지는 아니어도 데이터들이 많이 축적돼 있는 라지캡(시총 대형주)에 한해선 리포트 작성 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RA가 설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챗GPT가 때때로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만큼, 업무 활용은 시기상조란 이야기도 들립니다.
미래에셋증권 한 연구원은 "재무데이터 수치를 믿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리포트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잠깐 활용하는 정도"라며 "최근 냈던 리포트들을 기준으로 보면 챗GPT의 지분은 개당 약 1%로 아직까진 미미하다"고 했습니다. 한화투자증권의 한 연구원도 "아직까진 직접 데이터를 손 보고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며 "업무에 챗GPT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챗GPT는 경쟁의 대상일까요, 협업의 대상일까요? 아직까진 사람들의 시각이 두려움과 설렘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MLIV Pulse(펄스) 설문조사 결과 금융업 종사자 292명 중 3분의 2 이상은 자신의 직업이 챗GPT의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AI 도구를 사용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12%만이 "사용한다"라고, 27%만이 "사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일단 챗GPT는 협업의 시선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기자와 나눈 짧은 대화를 공유합니다. 챗GPT에게 '애널리스트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애널리스트의 업무를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챗GPT는 "금융과 경제 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이 요구되므로 애널리스트란 직업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뉴스 수집과 데이터 분석, 보고서 형태의 요약, 맞춤형 고객서비스(CS) 등은 지원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간단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우리가 할테니, 그 시간에 더 복잡하고 중요한 업무에 집중하란 얘긴데요. 문득 챗GPT의 등장으로 업무 성과 스트레스가 더 심해질 수 있겠단 우려도 듭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