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로펌들이 앞다퉈 기술 유출과 영업비밀 침해 사건 전담조직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등 전문성 강화에 공들이고 있다. 기업 간 기술 경쟁 과정에서 기술·영업비밀이 유출되는 일이 잦아지자 적극적으로 일감 확보에 나서는 양상이다.
"기술·영업비밀 침해 사건 잡아라"…몸집 키우는 로펌들

앞다퉈 전담조직 ‘벌크업’

9일 로펌업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바른은 최근 기존 ‘영업비밀침해대응팀’을 ‘산업기술유출대응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법원·검찰·경찰·특허청 등에서 다양한 유형의 산업기술 유출과 영업비밀 침해 사건을 다뤘던 전문가 30여 명이 이 조직에 포진해 있다. 바른은 지난 2월 30여 년간 경찰에서 산업기술 유출범죄 수사를 주로 맡았던 임홍기 고문을 영입하는 등 외부 인재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지평도 4일 기존 영업비밀·산업기술·정보보호팀을 ‘기술유출·영업비밀 침해 대응센터’로 격상시켰다. 지식재산권(IP), 정보기술(IT), 형사, 공정거래, 노동, 인수합병(M&A) 등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변호사들로 조직을 구성했다. 율촌은 최근 삼성전자·카카오페이 사내변호사 출신인 박일현 변호사를 새 식구로 맞아 ‘기술유출·영입비밀 침해 대응팀’ 전력을 보강했다. 이 팀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포렌식센터도 확대 개편했다.

국내 로펌업계 최초로 기술·영업비밀 전담조직을 꾸린 김앤장은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09년 20여 명으로 조직한 ‘영업비밀 사건팀’이 현재 150여 명 규모의 ‘영업비밀·기업정보보호그룹’으로 커졌다. 2017년에는 이 그룹에 중소기업 기술 탈취 사건을 전담하는 별도 팀을 꾸려 고객 영역을 중소기업으로까지 넓히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앤장을 추격하는 태평양은 2021년 ‘해외 IP 소송 태스크포스(TF)’를 ‘글로벌 IP 분쟁대응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인 강기중 팀장 등 1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광장도 120여 명의 전문가를 앞세워 다른 대형 로펌들과 경쟁하고 있다. 세종 화우 대륙아주 등 다른 로펌도 관련 조직 확대와 전문가 스카우트에 한창이다.

날로 커지는 기술·영업비밀 유출 사건

로펌이 경쟁적으로 기술·영업비밀 전담조직을 키우는 것은 관련 법적 분쟁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클라우드 시스템과 각종 소형 휴대 저장장치 사용이 활발해진 가운데 기업 간 기술력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1월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을 중국업체에 넘긴 일당이 구속 기소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은 세메스가 기술 유출로 직접 입은 손해만 최소 350억원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국내 산업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다가 적발된 사건은 총 112건, 피해 금액은 26조931억원에 달한다.

수사기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10월 과학수사부 사이버수사과에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신설하고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과학수사부는 국가정보원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관세청 등 다른 정부 기관과도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경찰도 지난 2월부터 시·도청 산업기술 보호 수사팀을 중심으로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엔 산업기술 유출 등 ‘경제안보 위해범죄’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김진성/박시온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