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시절은 잊어라"…벤처시장 '판'이 바뀐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커지는 벤처 세컨더리 시장
막 오른 VC-자산운용사 경쟁
특히 금융그룹 계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벤처펀드의 모펀드 운용사부터 벤처 세컨더리 펀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다. 글로벌 세컨더리 시장도 연기금 등 출자자(LP) 중심에서 블랙스톤 KKR 등 PE를 운용하는 대형 자산운용사(GP) 주도 방식으로 성장추가 옮겨가고 있다.
25년간 VC 업계에 몸담아 온 한 관계자는 "테헤란로 중심의 VC 업계가 무한경쟁 국면으로 진입한 것 같다"며 "대형 VC는 자산운용사와 글로벌 PE와의 경쟁에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중소형 VC들은 투자혹한기 속에서 상당한 구조조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해 민간 운용사로는 처음으로 혁신성장 재정 모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됐다. 2690억원(정부 재정 1500억원·산업은행 1190억원)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총결성금액 8000억원 규모의 자펀드 운용사(GP)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한자산운용도 지난 3월 IBK자산운용 등을 제치고 산업은행의 성장지원 모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1000억원 규모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유니콘 벤처 육성을 목표로 하는 1조5000억원의 자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모펀드는 벤처펀드나 사모펀드(PE) 등 자펀드에 자금을 대는 간접투자 펀드(Fund of VC/PE)다. 지금까지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이 주도해온 재정 모펀드를 운용을 지난해부터 민간 자산운용사에 일부 맡기기 시작했다.
한 운용사 대표는 "모펀드 운용사가 되면 VC나 PE를 평가 관리하면서 내부 사정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며 "추후 세컨더리 시장에서도 프라이싱(가격결정)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세컨더리 시장은 올해 1조5000억원대 규모로 본격적으로 열린다. 정부는 4월 20일 '혁신 벤처기업 자금지원 방안'을 통해 올해 5000억원으로 예정됐던 세컨더리 펀드 규모를 1조5000억원으로 3배 늘려 조성하기로 했다. 모태펀드가 출자해 조성하는 5000억원에 산업은행이 7000억원, 기업은행이 3000억원을 추가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대규모 세컨더리 펀드 설립은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에 대한 재투자로 후속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차원이다. 중소기업 창업투자회사 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는 4조4959억원에 이른다. 한 VC 관계자는 "연기금 등 주요 벤처펀드 LP들은 빠른 현금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1조5000억원대 세컨더리 펀드 시장이 열리면 VC들도 어느 정도 현금을 확보하면서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태펀드 출자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벤처투자는 기업의 구주를 인수하는 '일반 세컨더리펀드'를 3000억원 규모로 결성한다. 10년 만에 부활한 세컨더리펀드 출자사업엔 대성창업투자, 라구나인베스트먼트, 신한벤처투자, 지앤텍벤처투자 등 VC들이 뛰어들었다. 기존 벤처펀드의 출자자 지분을 인수하는 'LP지분유동화펀드'도 400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JB인베스트먼트, 메타인베스트먼트가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한국벤처투자가 올해 처음으로 자본시장법상 일반 사모집합투자기구를 세컨더리 펀드 출자 대상에 포함하면서 자산운용사에 출자사업 기회를 열어줬다. 이번 '벤처 세컨더리 사모펀드'는 모태펀드가 300억원을 출자해 총 1500억원 규모로 결성될 예정이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과 DS자산운용 등이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존 VC 업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민간자금 출자 여력이 있는 자산운용사를 위탁운용사로 확대했다"며 "모태펀드가 20%(300억원)만 출자해 1500억원을 조성하니 자금조달의 효율성은 오히려 높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조성하는 1조원 규모의 벤처 세컨더리 펀드 출자사업을 놓고도 자산운용사와 VC가 격돌할 전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는 가격결정 기능과 자금조달을 통한 거래 활성화 측면에서 VC보다 유리하다"며 "기존 LP 자금을 VC가 운용하는 방식보다 대형 운용사가 GP로 나서 세컨더리 펀드를 주도하는 방식이 국내에서도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한 VC 대표는 "여의도 자산운용사나 PE가 규모는 크지만 벤처 투자는 일부 부서에서 담당할 뿐"이라며 "벤처투자 고유영역에서는 어쨌든 VC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소폭 축소했지만 세컨더리 펀드는 지속해서 성장 중이다. 글로벌 금융투자정보업체 프레퀸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글로벌 사모펀드 순자산(AUM) 가운데 세컨더리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6%(약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출자자(LP) 주도 방식보다 운용사(GP) 주도 방식이 세컨더리 거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LP 주도 방식은 LP가 자신의 펀드 출자금을 다른 투자자에게 판매해 펀드 만기 전에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GP 주도 방식은 운용사가 펀드 자산을 자사의 새로운 펀드에 판매하면서 기존 펀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형태다. 펀드를 일괄 청산하는 방식에 비해 LP는 일부 자산을 새로운 펀드로 연장할 수 있고, GP도 시간과 자본금을 벌어 다시 한번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블랙스톤, 칼라일, KKR을 비롯해 세컨더리 전략 전문인 누버거버먼 등이 글로벌 세컨더리 펀드 시장을 주도하는 자산운용사로 꼽힌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세컨더리 펀드가 GP 주도로 활성화될 경우 자산운용사들이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빠른 현금화가 가능한 점도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이유다. 세컨더리 펀드는 대개 투자된 지 3~8년가량 지난 펀드에 투자한다. 회수 기간에 들어간 LP 지분에 투자되기 때문에 양수도 후 바로 회수가 진행돼 빠른 현금수입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최근 글로벌 세컨더리 시장에서 자산을 매각하는 이유도 바뀌고 있다. 과거엔 은행이나 보험사가 자본규제 및 유동성 규제에 따라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재간접펀드 투자 증가로 개별 기업 자산 축소 △비중에 맞춘 자산 재배분 △인수합병(M&A)에 따른 자산매각 △투자자의 재무 상황에 따라 보유자산 매각 등이 주를 이룬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막 오른 VC-자산운용사 경쟁
#. 지난 19일 KDB산업은행이 혁신성장펀드 위탁운용사 접수 결과를 발표하자 벤처캐피털(VC) 업계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를 주름잡는 대형 VC뿐만 아니라 대형 자산운용사, 증권사, 은행, 국내외 사모펀드까지 총 41곳이 출사표를 던져서다. 5000억원 이상을 조성해야 하는 성장지원펀드에는 국내 대형 VC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와 글로벌 PE 운용사인 어펄마캐피탈이 맞붙었다.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성숙하면서 그동안 벤처캐피털(VC)이 주도해온 경쟁에 대형 자산운용사부터 국내외 사모펀드(PE)까지 앞다퉈 진입하면서 '판'이 바뀌고 있다. '경계가 허물어진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금융그룹 계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벤처펀드의 모펀드 운용사부터 벤처 세컨더리 펀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다. 글로벌 세컨더리 시장도 연기금 등 출자자(LP) 중심에서 블랙스톤 KKR 등 PE를 운용하는 대형 자산운용사(GP) 주도 방식으로 성장추가 옮겨가고 있다.
25년간 VC 업계에 몸담아 온 한 관계자는 "테헤란로 중심의 VC 업계가 무한경쟁 국면으로 진입한 것 같다"며 "대형 VC는 자산운용사와 글로벌 PE와의 경쟁에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중소형 VC들은 투자혹한기 속에서 상당한 구조조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VC 모펀드 맡은 한화·신한운용
자산운용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벤처투자 시장을 넘보는 곳은 한화자산운용과 신한자산운용이다. 이들은 벤처펀드의 모펀드 운용사를 시작으로 올해 본격적으로 열리는 벤처 세컨더리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한화자산운용은 지난해 민간 운용사로는 처음으로 혁신성장 재정 모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됐다. 2690억원(정부 재정 1500억원·산업은행 1190억원)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총결성금액 8000억원 규모의 자펀드 운용사(GP)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한자산운용도 지난 3월 IBK자산운용 등을 제치고 산업은행의 성장지원 모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1000억원 규모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유니콘 벤처 육성을 목표로 하는 1조5000억원의 자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모펀드는 벤처펀드나 사모펀드(PE) 등 자펀드에 자금을 대는 간접투자 펀드(Fund of VC/PE)다. 지금까지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이 주도해온 재정 모펀드를 운용을 지난해부터 민간 자산운용사에 일부 맡기기 시작했다.
한 운용사 대표는 "모펀드 운용사가 되면 VC나 PE를 평가 관리하면서 내부 사정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며 "추후 세컨더리 시장에서도 프라이싱(가격결정)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5조 세컨더리 시장 각축전
자산운용사들이 궁극적으로 공략하는 건 벤처 세컨더리 시장이다. 세컨더리 펀드란 사모펀드나 벤처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 주식이나 펀드 지분을 인수하는 펀드를 말한다.국내 세컨더리 시장은 올해 1조5000억원대 규모로 본격적으로 열린다. 정부는 4월 20일 '혁신 벤처기업 자금지원 방안'을 통해 올해 5000억원으로 예정됐던 세컨더리 펀드 규모를 1조5000억원으로 3배 늘려 조성하기로 했다. 모태펀드가 출자해 조성하는 5000억원에 산업은행이 7000억원, 기업은행이 3000억원을 추가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대규모 세컨더리 펀드 설립은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에 대한 재투자로 후속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차원이다. 중소기업 창업투자회사 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는 4조4959억원에 이른다. 한 VC 관계자는 "연기금 등 주요 벤처펀드 LP들은 빠른 현금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1조5000억원대 세컨더리 펀드 시장이 열리면 VC들도 어느 정도 현금을 확보하면서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태펀드 출자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벤처투자는 기업의 구주를 인수하는 '일반 세컨더리펀드'를 3000억원 규모로 결성한다. 10년 만에 부활한 세컨더리펀드 출자사업엔 대성창업투자, 라구나인베스트먼트, 신한벤처투자, 지앤텍벤처투자 등 VC들이 뛰어들었다. 기존 벤처펀드의 출자자 지분을 인수하는 'LP지분유동화펀드'도 400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JB인베스트먼트, 메타인베스트먼트가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한국벤처투자가 올해 처음으로 자본시장법상 일반 사모집합투자기구를 세컨더리 펀드 출자 대상에 포함하면서 자산운용사에 출자사업 기회를 열어줬다. 이번 '벤처 세컨더리 사모펀드'는 모태펀드가 300억원을 출자해 총 1500억원 규모로 결성될 예정이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과 DS자산운용 등이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존 VC 업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민간자금 출자 여력이 있는 자산운용사를 위탁운용사로 확대했다"며 "모태펀드가 20%(300억원)만 출자해 1500억원을 조성하니 자금조달의 효율성은 오히려 높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조성하는 1조원 규모의 벤처 세컨더리 펀드 출자사업을 놓고도 자산운용사와 VC가 격돌할 전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는 가격결정 기능과 자금조달을 통한 거래 활성화 측면에서 VC보다 유리하다"며 "기존 LP 자금을 VC가 운용하는 방식보다 대형 운용사가 GP로 나서 세컨더리 펀드를 주도하는 방식이 국내에서도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한 VC 대표는 "여의도 자산운용사나 PE가 규모는 크지만 벤처 투자는 일부 부서에서 담당할 뿐"이라며 "벤처투자 고유영역에서는 어쨌든 VC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GP 주도 방식이 세컨더리 시장 견인
국내 세컨더리 펀드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지만 글로벌 세컨더리 펀드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성장했다. 세컨더리 펀드의 연간 거래 규모는 2009년 100억달러에서 2019년 880억달러로 약 9배 증가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거래 규모가 감소했으나 완만한 추이를 보인다.지난해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소폭 축소했지만 세컨더리 펀드는 지속해서 성장 중이다. 글로벌 금융투자정보업체 프레퀸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글로벌 사모펀드 순자산(AUM) 가운데 세컨더리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6%(약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출자자(LP) 주도 방식보다 운용사(GP) 주도 방식이 세컨더리 거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LP 주도 방식은 LP가 자신의 펀드 출자금을 다른 투자자에게 판매해 펀드 만기 전에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GP 주도 방식은 운용사가 펀드 자산을 자사의 새로운 펀드에 판매하면서 기존 펀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형태다. 펀드를 일괄 청산하는 방식에 비해 LP는 일부 자산을 새로운 펀드로 연장할 수 있고, GP도 시간과 자본금을 벌어 다시 한번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블랙스톤, 칼라일, KKR을 비롯해 세컨더리 전략 전문인 누버거버먼 등이 글로벌 세컨더리 펀드 시장을 주도하는 자산운용사로 꼽힌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세컨더리 펀드가 GP 주도로 활성화될 경우 자산운용사들이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니콘 지분 싼값에 살 기회"
세컨더리 펀드는 기존 벤처펀드보다 위험은 낮추면서 수익률은 양호하다는 게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상당 부분이 청산된 자산에 분산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미 개별기업에 투자가 상당 수준으로 진행된 이후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자산의 경우 상각이, 우량자산의 경우 가치상승이 이뤄진 세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순자산가액 대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유니콘 기업의 지분을 싼값에 살 가능성이 높다.빠른 현금화가 가능한 점도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이유다. 세컨더리 펀드는 대개 투자된 지 3~8년가량 지난 펀드에 투자한다. 회수 기간에 들어간 LP 지분에 투자되기 때문에 양수도 후 바로 회수가 진행돼 빠른 현금수입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최근 글로벌 세컨더리 시장에서 자산을 매각하는 이유도 바뀌고 있다. 과거엔 은행이나 보험사가 자본규제 및 유동성 규제에 따라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재간접펀드 투자 증가로 개별 기업 자산 축소 △비중에 맞춘 자산 재배분 △인수합병(M&A)에 따른 자산매각 △투자자의 재무 상황에 따라 보유자산 매각 등이 주를 이룬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