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 3일 오전 9시 27분

한때 ‘신의 직장’으로 꼽혔던 카프로가 생존을 건 마지막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카프로는 코오롱과 효성 두 섬유 공룡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두 차례 분쟁을 벌인 알짜 회사였다. 하지만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존폐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위기 상황에서도 사업 재편이 미뤄지고 노사 갈등으로 경영활동이 마비되는 등 합작사(JV)의 맹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몸값 1.5조→266억 카프로…벼랑 끝서 새 주인 찾을까
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카프로는 소시어스를 자문사로 선임하고 경영권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신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로 과반 지분을 넘기는 방식이다. 조 단위였던 카프로의 시가총액은 현재 266억원(이날 종가 기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10년대 초까지 나일론의 원재료인 카프로락탐 생산업체였던 카프로의 몰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1969년 국영기업으로 설립된 카프로는 1974년 민영화 과정에서 효성티앤씨가 지분 20.0%를,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지분 19.2%를 확보해 공동 경영을 맡았다. 두 회사는 이 알짜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1996년과 2004년 두 차례 분쟁도 불사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효성 측이 차명 계좌로 카프로 지분을 확보했다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효성 오너 일가가 수사받기도 했다.

카프로는 오랜 기간 국내 카프로락탐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전성기였던 2011년 매출 1조1727억원, 영업이익 2163억원을 올렸다. 당시 시총은 1조5000억원에 달했다. 대기업 이상의 평균연봉에 근속연수가 20년이 넘는 ‘신의 직장’으로 언론을 장식하기도 했다.

2012년께 중국 기업들의 카프로락탐 증설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면서 2012년 24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실적은 매해 곤두박질했다. 지난해에도 1222억원 손실을 냈다. 차입금 상환이 불투명해지자 올해 3월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4월엔 본업인 카프로락탐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현상 유지’가 최우선인 합작사 기업 문화가 발목을 잡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효성티앤씨 간 의사 조율이 쉽지 않아 중국 기업의 급부상에도 사업 재편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노사 갈등도 증폭했다. 올초 노조가 코오롱에서 파견한 최고경영자(CEO)를 두고 경영책임을 물으며 퇴진 운동을 벌였다.

회사가 흔들리자 대주주들은 이례적으로 보유 지분을 장내에서 대거 팔아버리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말 12.75%였던 지분을 시장에서 대부분 처분했다. 지분 9.56%를 보유한 코오롱인더스트리도 올해 1월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꿨다. 처분 의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매각 측은 사업 구조를 뜯어고쳐 회사를 회생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카프로는 카프로락탐 생산 중간단계에서 수소·황산·암모니아 등을 정제하는 설비 및 기술을 보유해 왔다. 기존 설비를 블루수소·그린수소 설비로 탈바꿈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