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가 막 일본열도를 덮치기 시작한 지난 7월18일.

일본의 한 노(老) 기업총수가 기자회견장의 마이크 앞에 섰다.

눈가엔 이슬이 맺히고 목소리는 떨렸다.

"42년의 재계생활을 오늘로서 끝내려 합니다"

세이부백화점을 축으로 한 유통재벌 세존그룹의 쓰쓰미 세이지(堤淸二.73)) 회장.

회사를 빚더미에 올려 놓고는 속인으로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그의 또 다른 신분을 염두에 두고 이날 퇴진을 ''낭만적인 귀거래사(歸去來辭)''로 표현했다.

그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소설을 연재(99년 ''바람의 생애'')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욕심 탓에 회사를 망친 ''실패한 CEO''라는 여론이 더 강했다.

쓰쓰미 회장의 사퇴발표가 있던 날, 세존그룹 산하 세이유환경개발은 세이부백화점에 부채 5백억엔을 대신 갚아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세이부백화점은 세이유를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세이부의 빚도 4천3백억엔.

내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처지였다.

세이유는 다음날 파산신청을 했다.

그리고 8월초, 한때 일본최대의 세이부백화점도 빚더미에 눌려 질식사 신고서를 냈다.

재벌 2세인 쓰쓰미는 1958년 부친 야스지로(세이부철도그룹총수)로부터 백화점을 물려받아 유통제국 세존그룹을 설립했다.

이후 30대초반의 젊은 패기를 앞세워 자신만만하게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레저문화(인터컨티넨털호텔&리조트) 부동산(세이유환경개발) 금융(도쿄시티파이낸스) 프로야구단(세이부라이온즈)을 설립하는 등 확장행로는 끝이 없었다.

한때 계열사 수가 2백20개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반을 다지지 않은 성급한 확장은 90년대초 버블경기가 꺼지면서 세존그룹을 쇠락의 길로 몰고가기 시작했다.

98년에는 부동산시장 침체의 장기화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빚이 2조엔으로 불어났다.

다급해진 그는 인터컨티넨털호텔&리조트와 긴자호텔을 떼내고 편의점 패밀리마트의 주식 30%를 이토추상사에 넘겼다.

그해 12월 세이유환경개발은 81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25개로 줄이는 등 대대적인 살빼기에 착수했다.

그러나 기울어지기 시작한 사운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오는 날을 대비하지 않은 무리한 사업확장.

그도 이 필패(必敗)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형제간의 지나친 라이벌의식, 그가 ''패자(敗者) CEO''가 된 또 다른 원인이었다.

자신을 제치고 세이부그룹을 물려받은 이복동생을 눌러야 한다는 사감(私感)으로 경영시야가 탁해졌다.

결국 과욕과 지나친 경쟁심으로 유통제국열차를 중도에 탈선시키고 말았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