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구하기' 고육책 관측도

[리먼 '죽이고' AIG 왜 살렸나] "자산ㆍ매출 2배…파산충격 훨씬 커"
민간 금융사를 살리기 위해 더 이상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입장을 보였던 미국 정부가 AIG를 살리기로 최종 결정한 것은 AIG가 파산할 경우 그 파괴력이 월가 투자은행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AIG는 전 세계 보험고객이 7400만명에 달할 뿐 아니라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상품을 무려 4410억달러나 판매했다. AIG가 무너지면 CDS 시장이 무너지고,매매에 관련된 수많은 금융회사들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몰락하게 놔두기엔 너무 커'

지난주 월가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납세자의 혈세를 쏟아 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리먼은 파산보호를 신청해야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6일 미 정부는 AIG에 최대 85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정부가 왜 이틀 만에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됐을까.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AIG의 파산에 따른 시장 충격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AIG는 세계 거의 모든 금융회사와 직ㆍ간접으로 얽혀 거래를 해왔다. 모기지와 기업대출을 포함해 880억달러의 자산에 보험을 제공하고 있다. AIG는 특히 4410억달러 상당의 채권에 대한 부도위험을 줄일 수 있는 파생상품(CDS)을 금융회사에 판매한 상태다. 만일 AIG가 파산할 경우 CDS를 보유한 다른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고,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리먼의 경우 파산하더라도 손실이 주주와 종업원,일부 무담보 채권보유자에게 손실이 국한된다고 미 정부는 판단했다. RBC 캐피털마켓은 "1조1000억달러의 자산과 전 세계 130개국에 7400만명의 고객을 갖고 있는 AIG가 몰락하면 금융산업의 손실 규모가 총 1800억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AIG의 CDS에 상당히 얽혀 있는 골드만삭스가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격적으로 구제금융을 결정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음으로 AIG가 보험사 특성상 우량자산을 상당규모량 보유하고 있는 점도 리먼과는 다른 운명을 맞게 된 요인이다. 리먼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원금을 전액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AIG는 이와 달리 순조롭게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AIG 구제는 '대마불사'의 기준을 둘러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 정부가 리먼을 구하는 것을 거부한 지 이틀 만에 AIG를 구제키로 함으로써 '대마불사'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관한 논란을 불러왔다고 전했다.

[리먼 '죽이고' AIG 왜 살렸나] "자산ㆍ매출 2배…파산충격 훨씬 커"
◆금융시장 안정될까

투자자들의 심리는 일단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IG의 조기 정상화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주택시장 침체로 손실이 불어나면 또다시 정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또 월가에는 유동성 압박을 받은 대형 금융사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월가에선 AIG에 이어 저축ㆍ대부(S&L)업체인 워싱턴뮤추얼과 와코비아은행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회사 주가는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최근 급락했다. 어떻게든 추가적인 자본을 확충해야 하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