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워치-러시아ㆍ우크라이나 가스분쟁] 러의 우크라이나 길들이기…유럽은 '가스대란'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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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가격분쟁 이면엔 정치갈등·이권 등 얽혀
러, 감시단 합의로 공급 재개될듯 … 불씨는 여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분쟁으로 유럽은 또 한 차례 '가스대란'의 공포와 추위에 떨어야 했다. 유럽연합(EU)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8일 유럽행 천연가스 수송을 감시할 EU 감시단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키로 합의함으로써 가스공급은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가 감시단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 가능한 한 조속히 천연가스 공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가스 공급 중단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더라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해묵은 가스분쟁은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유럽에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스분쟁 왜 자꾸 일어나나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930년대 옛 소련 가스산업의 태생지였다. 1960년대 소련의 가스산업 중심이 서시베리아로 옮겨졌지만 우크라이나는 이후에도 가스관과 가스저장 시설 등을 갖춘 가스산업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91년 옛 소련이 붕괴되고 국경이 갈리면서 문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가즈프롬의 핵심 자산인 가스관과 가스 저장창고 시설 등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속하게 되면서 러시아는 직접적인 통제를 할 수 없게 됐다.
첫 번째 분쟁은 1990년대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가스 대금을 받으려고 시도하면서 불거졌다. 러시아가 가스 대금 납부를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의 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우크라이나는 유럽 수출용 가스관에서 천연가스를 빼서 썼다. 유럽이 가스 공급 감소에 항의하자 러시아는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재개했다.
2005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수출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시장가격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힌 이후 양측 간의 갈등은 또다시 불거졌다. 급기야 2006년 1월엔 사흘간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이 전면 차단됐다.
이번에도 가즈프롬이 가스가격을 지난해의 1000㎥당 179.5달러에서 250달러로 올리겠다고 하고,나프토가즈는 200달러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사태가 촉발됐다.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수출가격(지난해 1000㎥당 420달러 수준)에 맞추기 위해 우크라이나로의 공급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 수출가격을 올리려면 러시아의 가스관 사용료도 동시에 올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약 20%는 가스관 사용료로 상계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온전히 가격 협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올리카르히(신흥 재벌)들의 가스 거래 이권을 둘러싼 다툼을 비롯 △우크라이나 정계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 간의 내분 △2004년 오렌지 혁명(오렌지색을 내세운 친서방 성향 야당의 선거 승리) 이후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정치적 갈등 △에너지를 무기로 서방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야심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에너지 근본대책 목소리 높아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분쟁으로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최종 소비자인 유럽이다.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중 80%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들어온다.
과거 공산권이던 동유럽 국가들의 의존도가 특히 높고,독일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도 상당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서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1984년 서시베리아에서 서유럽까지 연결되는 2만㎞의 우렌고이~우즈고로드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서부터다. 당시 프랑스 서독 등 서유럽 국가들은 가스 공급 대가로 현금 또는 가스관 등의 장비를 제공했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이런 거래가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에 매번 볼모가 되자 유럽에서도 가스공급처 다양화 등 근본적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그동안 유럽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1월 가스 공급 중단사태 이후 일부 EU 회원국들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산 가스를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실어나르는 '나부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러시아의 견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러시아는 자체적으로 분쟁이 잦은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 등을 거치지 않고 유럽으로 직접 통하는 가스관 건설 등을 추진하며 유럽 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지속적으로 꾀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신에너지 정책'에서 카스피해 연안국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대체에너지 프로젝트를 대규모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 가스분쟁이 EU의 에너지 전략 추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러, 감시단 합의로 공급 재개될듯 … 불씨는 여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분쟁으로 유럽은 또 한 차례 '가스대란'의 공포와 추위에 떨어야 했다. 유럽연합(EU)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8일 유럽행 천연가스 수송을 감시할 EU 감시단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키로 합의함으로써 가스공급은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가 감시단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 가능한 한 조속히 천연가스 공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가스 공급 중단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더라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해묵은 가스분쟁은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유럽에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스분쟁 왜 자꾸 일어나나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930년대 옛 소련 가스산업의 태생지였다. 1960년대 소련의 가스산업 중심이 서시베리아로 옮겨졌지만 우크라이나는 이후에도 가스관과 가스저장 시설 등을 갖춘 가스산업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91년 옛 소련이 붕괴되고 국경이 갈리면서 문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가즈프롬의 핵심 자산인 가스관과 가스 저장창고 시설 등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속하게 되면서 러시아는 직접적인 통제를 할 수 없게 됐다.
첫 번째 분쟁은 1990년대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가스 대금을 받으려고 시도하면서 불거졌다. 러시아가 가스 대금 납부를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의 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우크라이나는 유럽 수출용 가스관에서 천연가스를 빼서 썼다. 유럽이 가스 공급 감소에 항의하자 러시아는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재개했다.
2005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수출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시장가격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힌 이후 양측 간의 갈등은 또다시 불거졌다. 급기야 2006년 1월엔 사흘간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이 전면 차단됐다.
이번에도 가즈프롬이 가스가격을 지난해의 1000㎥당 179.5달러에서 250달러로 올리겠다고 하고,나프토가즈는 200달러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사태가 촉발됐다.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수출가격(지난해 1000㎥당 420달러 수준)에 맞추기 위해 우크라이나로의 공급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 수출가격을 올리려면 러시아의 가스관 사용료도 동시에 올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약 20%는 가스관 사용료로 상계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온전히 가격 협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올리카르히(신흥 재벌)들의 가스 거래 이권을 둘러싼 다툼을 비롯 △우크라이나 정계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 간의 내분 △2004년 오렌지 혁명(오렌지색을 내세운 친서방 성향 야당의 선거 승리) 이후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정치적 갈등 △에너지를 무기로 서방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야심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에너지 근본대책 목소리 높아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분쟁으로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최종 소비자인 유럽이다.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중 80%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들어온다.
과거 공산권이던 동유럽 국가들의 의존도가 특히 높고,독일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도 상당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서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1984년 서시베리아에서 서유럽까지 연결되는 2만㎞의 우렌고이~우즈고로드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서부터다. 당시 프랑스 서독 등 서유럽 국가들은 가스 공급 대가로 현금 또는 가스관 등의 장비를 제공했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이런 거래가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에 매번 볼모가 되자 유럽에서도 가스공급처 다양화 등 근본적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그동안 유럽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1월 가스 공급 중단사태 이후 일부 EU 회원국들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산 가스를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실어나르는 '나부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러시아의 견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러시아는 자체적으로 분쟁이 잦은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 등을 거치지 않고 유럽으로 직접 통하는 가스관 건설 등을 추진하며 유럽 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지속적으로 꾀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신에너지 정책'에서 카스피해 연안국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대체에너지 프로젝트를 대규모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 가스분쟁이 EU의 에너지 전략 추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