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당국이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위험성을 더 잘 파악했더라도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13일 장외거래(OTC) 파생상품 규제 개혁안의 밑그림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털어놨다. OTC 파생상품이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뒤늦은 후회였지만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와 감독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미 정부는 또 다른 금융위기 뿌리로 지목되는 금융권의 과도한 임직원 보수 및 인센티브 체계에도 메스를 가하기로 했다.

◆장외 파생상품 실태 어떻기에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파생상품을 '금융시장의 대량살상 무기'라고 비난했다. 그런 그도 파생상품의 유혹에 빠져 막대한 투자손실을 봤다. 투자의 달인을 울린 파생상품의 전 세계 거래 규모는 작년 말 현재 450조달러(로이터통신)에서 680조달러 이상(국제결제은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이 약 절반인 200조달러의 시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주식이나 채권처럼 거래소에서 거래와 결제가 되지 않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같은 OTC 파생상품이 96.6%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OTC 시장은 미 정부 감독의 손이 미치지 못하던 사각지대였다.

미 정부의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받아 연명하고 있는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은 일정 수수료를 받고 부도위험을 보장해주는 CDS 상품을 대거 팔았다가 신세를 망친 대표적 사례다. 국제스와프그룹은 전 세계 CDS 시장 규모를 38조달러대로 추산하고 있다.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미 4대 은행이 보유 · 거래하고 있는 파생상품 중 OTC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90%를 넘는다. 금융시장 안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미 정부로선 최대 불안 요소인 셈이다.

◆전방위적 규제 · 감독 강화키로

때문에 미 재무부는 거래 현황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중앙집중식 거래소를 통한 OTC 파생상품의 전자거래를 추진하기로 했다. 거래 금융사들이 최대한 보수적으로 초기 증거금을 확보토록 하고 거래 상황도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감시견으로 삼을 증권거래위원회(SEC)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는 계약 규모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과의 공동 규제 · 감독으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협조 체계도 마련하기로 했다.

티모시 장관은 이날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내 관련 법을 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독자안을 추진해온 의회 쪽은 대환영 분위기다. 미 정부와 의회의 파생상품 규제 · 감독은 사실상 사상 처음이다. 2000년 '상품선물 현대화법'이 도입됐으나 로비에 밀려 파생상품은 규제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당시 민주당,공화당과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도 이를 승인했다.

◆금융사 보수 체계 개혁도 시동

미 정부는 금융사들의 임직원 보수 · 인센티브 체계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에 돌입했다. 개혁 대상에는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사와 그렇지 않은 금융사를 모두 포함시키기로 했다. 파생상품과 같은 리스크가 큰 거래에 부나방처럼 쏠려 단기 성과를 내고 보상도 많이 받는 기존 체계를 바꿔 투자자와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면서 장기 성과도 낼 수 있는 체계를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미 정부는 이를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SEC의 권한과 규정을 활용하거나 새로 입법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FRB의 경우 금융사의 안정성과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는 보수 · 인센티브를 제한하는 규정을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양적 실적보다는 거래의 질을 따져 보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 주께 구체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 하원 금융위원회는 경제에 체계적 위험을 미치거나 금융사의 생존력을 위협하는 보수와 인센티브를 정부가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대형 다국적 은행의 예금보호와 적정자본 유지 등을 감독하기 위한 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스티진 클레센스 IMF 연구국장보는 미 애틀랜타 FRB 회동에 참석해 "대형 다국적 은행을 중기적으로 규제하는 최선의 방안은 '인터내셔널 뱅크 차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새 기구를 신설하든지 아니면 단일 혹은 복수의 기존 국제금융기구 일부분이 그 기능을 수행토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