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의 월급 통장 수만 개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징용 노동자의 보상 요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교도통신은 “징용 노동을 한 조선인 명의의 우체국 통장 수만 개가 당사자 동의 없이 일본 유초은행(우편저축은행) 후쿠오카시 저금사무센터에 보관돼 있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며 “이는 조선인 징용 노동자에 대한 미지급 임금을 적립한 통장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8일 보도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조선인을 징용해 탄광 등에서 중노동을 시킨 뒤 저임금을 주고, 그나마 일부는 떼어 내 강제로 저금하게 했다. 일본 기업들이 억지로 들게 한 저금은 갑종저금 규약저금 광원예금 기숙사저금 등 30여종에 달했다. 탄광에 끌려간 일부 징용자들에겐 곡괭이값까지 임금에서 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들은 저축을 강요하고서도 정작 통장은 지급하지 않았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 인해 강제 동원 피해자들은 물론 한국 정부도 이런 저금의 규모를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도통신은 이와 함께 “도쿄의 ‘우편저금·간이생명보험관리기구’에 조선·대만·남양제도 등 일본이 강점한 지역에서 활용된 ‘외지우편저금’ 계좌 약 1만8000개(약 22억엔)도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일본 기업 등이 조선인 노동자가 받아야 할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물증’이 발견됨에 따라 미지급 임금에 대한 청구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과 징용 피해자 간 소송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오타 오사무 도시샤대 교수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통장은 일본 정부가 미지급 임금에 대한 조사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에 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라며 “통장 존재가 확인된 만큼 일본 정부의 책임을 다시 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