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무력 충돌로 번졌다. 반정부 시위를 이끌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군사 봉기’를 촉구하면서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진압에 나서면서 양측 간 소규모 교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과이도 의장이 군과 함께 정권 퇴진 압박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일에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고돼 베네수엘라 사태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AP·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과이도 의장은 이날 오전 수도 카라카스의 한 공군기지 외곽에서 수십 명의 중무장 군인과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찍은 3분가량의 동영상을 공개하며 군의 봉기를 촉구했다. 그는 “(정권 교체를 위한) 자유 작전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며 “국민과 군이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카라카스에선 수만 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진압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하자 시위대는 돌 화염병 등을 던지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마두로 정권 측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보건당국을 인용해 최소 69명이 다쳤다고 전했고, 로이터통신은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마두로 정권은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군인들 진압에 나섰다. 과이도 의장이 집회를 연 공군기지 내부에서 최루탄이 발사되고, 양측이 총격전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군부가 대대적으로 봉기에 나서는 조짐은 포착되지 않았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저녁 국영방송에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나와 “과이도의 쿠데타 시도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반역자들을 형사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지금으로선 마두로의 강력한 군 장악력이 흔들린다는 신호가 없다”고 보도했다.

호르헤 아레아사 외무장관은 “이번 (군사 봉기) 사건은 워싱턴과 (미국) 국방부, 국무부, 존 볼턴(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계획했다”며 “그들이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과이도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봉기에 가담한 군인은 전체 베네수엘라 군인 20만 명 중 30명가량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군사 봉기가 소규모에 그치면서 1일 예고된 집회가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이도 의장은 이날 집회를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대 규모 거리 시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마두로 정권도 이에 맞서 대대적인 친정부 시위를 촉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지난해 5월 마두로 대통령이 주요 야권 인사가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비롯됐다. 당시 미국 등 서방은 “불공정 선거”라며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두로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에 과이도 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며 ‘이중권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민심은 불안하다.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은 130만%에 달했고 경제성장률은 -18%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오일머니 덕분에 중남미 최대 부국으로 꼽혔다. 사회주의 정책과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재정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경제난이 가속화됐다.
베네수엘라, 유혈 충돌…과이도 "군사 봉기" vs 마두로 "쿠데타 진압"
폼페이오 "마두로 쿠바 도피 러시아가 막아"

베네수엘라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미국과 러시아가 다시 첨예하게 대립했다. 미국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하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를 떠나라”고 압박했다. 반면 러시아는 “군사적 충돌을 유발한다”며 과이도 의장을 맹비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CNN에 출연해 “마두로 대통령이 오늘 아침 쿠바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의 만류로 떠나지 않았다”며 “비행기를 출발시키라”고 압박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어이없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평화적 권력 이양을 원하지만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과 그들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트위터에 “독재자가 베네수엘라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며 과이도 지지를 선언했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캐나다와 중남미 주요 국가가 발족한 리마 그룹도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과이도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스페인은 성명을 통해 “즉각적인 새 대통령 선거를 지지한다”며 “과이도는 민주적인 정권 전환을 이끌 합법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급진적인 야권이 다시 한 번 폭력적인 대립 수단으로 회귀했다”며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고 공공질서를 침해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데타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한 국가로서, 터키는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시도를 비난한다”고 트윗을 올렸고 쿠바도 과이도 의장 비난에 가세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