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이 지난 1일 아라비아해에서 합동훈련 중인 모습.  /한경DB
미국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이 지난 1일 아라비아해에서 합동훈련 중인 모습. /한경DB
미국이 페르시아만 원유 수송로 보호를 위해 동맹국에 다국적 해군 구성 등 군사적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이 자국 유조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혜국으로 언급한 한국도 지원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미국이 아시아 중동 등의 동맹국에 걸프 해역을 지킬 군함 등 해양 군사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 등 원유 수송로에서 이란의 공격을 막기 위한 이른바 ‘감시병 프로그램(sentinel program)’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美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보내야"…한국 등 동맹국 압박 움직임
페르시아만에서의 감시와 보호 업무에 동맹국 군함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다국적군으로 각국 군함은 미군이 아니라 각국이 지휘권을 갖는다. 미국은 해군과 공군, 그리고 통신망을 구축해 다국적 해군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 국무부 고위 관료는 “적극적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우방들이 ‘감시병 프로그램’에 물적 및 재정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24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잇달아 방문해 걸프 해역의 해상 운송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과 아시아, 유럽을 아우르는 ‘국제 동맹’을 구축하자고 촉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각국이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의 일정 구역을 맡아 유조선과 민간선박 운항을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맹국들이 이란과 분쟁에 휘말리는 걸 꺼리는 만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나라들은 전투 임무는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권한대행도 회원국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NATO 회원국들은 확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에 참여를 제안할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각국이 자국의 유조선을 보호해야 한다며 “중국은 석유의 91%를 그 해협에서 얻고, 일본은 62%, 많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6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로 중국과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를 꼭 집어 거론하며 “그들 나라가 이란의 공격적 행동과 자신들의 경제를 감안할 때 미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한국은 전체 원유 중 중동산 원유 비중이 약 85%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중동 산유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원유 대부분을 페르시아만을 통해 들여오고 있다.

일본은 파병에 적극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25일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수송은 우리의 에너지 안보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말했다. 일본이 파병하면 2016년 안보관련법을 개정해 ‘국제연대 평화안전 활동’ 명목의 자위대 파병 길을 터놓은 뒤 첫 실질적 해외 파병이 될 수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에 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과의 갈등에 관해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을 떠나기 전에 한 발언보다 한층 여유가 느껴지고 상대를 달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는 분석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