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에 매기는 ‘디지털세’ 도입을 놓고 세계 각국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지난 18일 주요 7개국(G7)이 최소세율 디지털세 도입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별개로 프랑스,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은 각자 독자적인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11일 프랑스 상원이 디지털세 법안을 의결하자 미국은 자국 기업에 불이익이 가면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가 간 관세가 아니라 특정 국가의 세제를 놓고 무역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유럽연합(EU) 안에서도 디지털세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디지털세가 뭐길래 각국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인지, 쟁점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봤다.

디지털세란

디지털세는 과거에 없던 과세 체계다. 기업의 매장 또는 공장 대신 ‘디지털 사업장’이라는 개념을 쓴다. 통상 기업은 본사를 등록한 나라에서 이익을 낸 만큼 법인세를 낸다. 반면 디지털세는 제도를 도입한 나라에 기업 본사가 있는지에 관계없이 디지털 서비스 매출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세는 법인세 등 기존 세금과 별도로 부과된다.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기업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지금껏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낮춘 국가 간 경쟁이 별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언스트앤영(EY)은 보고서에서 “디지털세는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기업에 세금을 거둘 권리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새로 정하는 것”이라며 “국제 정치와 크게 얽힌 세금 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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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얼마나 내나

구체적인 안을 내놓은 것은 현재 프랑스와 영국뿐이다. 프랑스는 글로벌 연매출 7억5000만유로(약 9900억원)가 넘고 프랑스 내에선 2500만유로(약 33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IT기업에 대해 프랑스 내 연매출의 3%만큼을 디지털세로 거둬갈 예정이다. 프랑스 국민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디지털 광고 서비스도 과세 대상이다. 프랑스 정부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과 프랑스 온라인 광고업체 크리테오 등 30여 개 기업을 적용 대상으로 보고 있다. 영국은 글로벌 연매출이 5억파운드(약 7370억원) 이상이고, 영국 내 연매출은 2500만파운드(약 370억원)를 넘는 IT기업에 영국 매출의 2%를 세금으로 부과할 계획이다.

양국 모두 디지털 서비스로 번 돈만 과세 대상으로 간주한다. 가령 애플은 앱(응용프로그램) 개발자와 이용자 간 서비스 중개 플랫폼인 앱스토어 매출에 디지털세가 부과된다. 아이폰 제조·판매로 올린 매출엔 디지털세를 매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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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추진하나

디지털세는 IT기업이 제조업 등 전통적인 분야 기업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는 불만에서 생겨났다. 현행 국제 조세조약에 따르면 각국은 고정사업장과 유형자산을 주요 근거로 기업에 과세한다. 한 제조 기업이 아시아 본부를 싱가포르에 두고, 말레이시아에 공장 또는 매장이 있다면 말레이시아에서도 세금을 낸다. 물류 이동 등 매출이 발생하는 과정에도 세금이 붙는다.

하지만 IT기업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국가마다 생산·판매 시설을 짓지 않고도 국경을 넘어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데이터와 지식, 기술 특허 등 무형자산에 주로 의존하다 보니 과세할 근거도 찾기 힘들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에 진출한 IT기업의 평균 실효세율(매출 대비 납부세액 비율)은 9.5%에 불과하다. 제조기업 평균 실효세율(23.2%)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 등은 IT기업이 매출이 발생한 지역, 서비스 이용자의 거주 지역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등 EU 회원국 일부가 디지털세 도입에 적극적인 것은 EU 역내 법인세율 격차가 큰 탓도 있다. EU 지역에 진출한 기업은 회원국 한 곳에만 본부 법인을 두고 세금을 내면 된다. 글로벌 IT기업이 주로 법인세율이 낮은 아 일랜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에 본부를 두는 이유다.

미국은 왜 반대하나

미국은 디지털세 도입에 강력히 반대한다. 거대 글로벌 IT기업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EU 국가가 자국 IT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세제도를 사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디지털세는 영업이익 대신 매출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주요 미국 기업이 유럽에서 내야 할 세금이 커진다는 것도 우려한다.

미국은 개별국 디지털세를 막기 위해 ‘무역법 301조’라는 강수를 꺼냈다. 미국 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제도 및 관행에 대해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0일 “미국은 디지털세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한다는 점을 매우 우려한다”며 “프랑스의 세금 제도가 차별적인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18일 “G7이 디지털세 도입에 합의했지만, 이와 별개로 (프랑스 등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제재 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쟁점은

디지털세를 둘러싼 국제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각국 견해차가 큰 데다 국제 기준 마련도 늦어지고 있어서다. EU는 당초 공동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했지만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이 반대해 무산됐다. 네덜란드 등은 자국 IT기업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고, 미국의 무역 보복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설계 중인 디지털 거래 수익 과세 체계 가이드라인도 변수다. 내년까지 내놓는 게 목표지만 국제 협의가 늦어지면서 준비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OECD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 표준으로 통한다.

G7은 내년 1월까지 디지털세와 관련, 포괄적 개요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세부 계획은 OECD와 G20 회의 등에서 논의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회의 등에서 향후 디지털세 관련 국제 합의안이 마련되면 프랑스와 영국 등이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포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NYT는 “온라인 거래 세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전통적 동맹국을 갈등으로 내몰고 있다”며 “국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한동안 국가 간 기업을 겨냥한 증세와 새 관세가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