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싸게, 더 멋지게, 더 환경적으로
의류 수집재단 설립해 옷 재활용
PVC 등 화학물질 없는 패션 추구
공정 임금 로드맵 도입도 추진
H&M은 스페인 자라, 일본 유니클로와 함께 3대 SPA 브랜드로 불린다. 헬메르손 CEO의 선임은 지난달 말 H&M이 ‘깜짝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공개됐다. 온라인 판매 부진과 패션업계의 경쟁 심화로 한때 위기설에 시달렸던 H&M은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이익이 증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CEO 교체는 H&M이 최악의 시기를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자라 주가 4배 오를 때 H&M 10%
헬메르손 CEO의 임명은 H&M이 새롭게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H&M은 그동안 가족 경영을 고수했다. 얼링 페르손 H&M 창업자의 손자 카를 요한 페르손 전임 CEO는 2009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CEO직에 올랐다. 그는 세계적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와 로베르토 카발리 등을 영입해 협업 제품을 내놨다. 소비자들은 세계적 디자이너의 의류를 싼 가격에 판매하는 H&M에 열광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 확대와 SPA 브랜드 경쟁 심화 등의 변화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자라가 다양한 취향과 가격대의 하위 브랜드를 내놓으며 승승장구한 것과 대비된다. H&M의 재고는 쌓여갔고 2015년 이후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페르손 전 CEO의 재임 기간인 10년간 H&M 주가는 겨우 10% 올랐다. 반면 자라의 모회사 인디텍스 주식은 같은 기간 네 배 상승했다.
H&M은 뒤늦게 체질 개선에 나섰다.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는 대신 온라인 사업 투자를 확대하고 다양한 브랜드를 내놨다. 옷, 양초, 화분 등 광범위한 쇼핑 목록을 선보였다. 타사 브랜드 제품, 생활용품, 카페테리아 등을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개념의 매장도 눈길을 끌었다.
H&M은 작년 4분기 54억크로나(약 5억60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48억크로나)를 웃돌았다.
H&M에서 20여년 근무…지속가능 경영
헬메르손 CEO는 H&M에서 20여년 일했다. 스웨덴 북부의 셸레프테오에서 태어난 그는 1997년 스웨덴 우메오 경영경제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H&M에 입사해 구매 업무를 맡았다. 헬메르손 CEO는 비즈니스 전문 소셜미디어 링크트인에 “나의 꿈은 패션산업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며 “패션을 긍정적 희망으로 삼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올렸다. 특히 그는 2006년 방글라데시 다카의 생산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인생 판도를 바꿨다”고 했다. 헬메르손 CEO는 다카에서 인사관리(HR) 매니저로 일했다. 그는 “H&M이 어떻게 사업을 통해 방글라데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눈으로 봤다”며 “이후 홍콩에서 2년6개월간 속옷 공급망 관리자로 일하며 아시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고 회상했다.
H&M 본사가 있는 스톡홀름으로 돌아온 것은 2010년 무렵이었다. 그는 H&M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 전략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지속가능경영부문 책임자, 생산부문 글로벌 책임자 등을 거쳐 2018년 COO에 올랐다.
헬메르손 CEO는 지속가능경영부문을 담당하면서 ‘스타 경영인’ 대열에 올랐다. 그는 5년간 이 업무를 맡았다. 스웨덴의 유력 주간지 베칸스어페러는 2014년 3월 헬메르손 CEO를 ‘스웨덴 산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뽑았다. 당시 지속가능경영 최고책임자라는 직책은 기업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주간지는 헬메르손 CEO에 대해 “스웨덴 주식시장의 최대 기업인 H&M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폴리염화비닐(PVC) 등 화학물질을 제품에서 단계적으로 제거하도록 회사 측을 설득했다. 의류 수집 재단도 설립했다. H&M은 2014년 2월 의류 수집 재단에 모인 의류를 재활용한 제품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헬메르손 CEO는 “H&M 제품은 칠레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팔리고 있고, 나는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격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아이디어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더 싼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 목표는 없어…일의 일부”
헬메르손 CEO의 혁신적인 시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정 임금 로드맵이 대표적이다. 헬메르손 CEO는 “임금은 우리가 공급망을 다루는 문제 중 가장 복잡하다”며 “아주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했고 여러 시도도 했지만 좌절감이 컸던 분야”라고 했다. 그는 H&M 내에 임금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정 임금 로드맵을 논의했다. 헬메르손 CEO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어려운 문제와 관련해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꽤 용기있었다”고 자평했다.
헬메르손 CEO는 “나는 걱정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스타일이 아니다”며 “중요한 것에 책임을 느끼지만 그것을 도전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는 훌륭하고 재능있는 동료들이 있다”며 “우리는 계획이 있고 스스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직장인’이라고 불렀다. 헬메르손 CEO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한 번도 개인적인 진로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며 “일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H&M에서 일했다. 나는 회사와 가치를 매우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4분기 H&M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한 627억400만크로나(약 65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작년 총 매출은 2327억6400만크로나(약 247억3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1% 늘었다. 이는 2015년 19.3% 성장률을 나타낸 이후 4년 만의 기록이다. 다만 매출이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수익률은 여전히 낮아 개선 과제로 꼽힌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