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핀란드 정부가 도입했던 기본소득제도가 근로의욕을 고취시켜 실업률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자들에게 제공되는 재정적 인센티브와 취업률과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핀란드 정부의 공식 평가다. 다만 수급자들의 복지와 삶에 대한 만족도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본소득 도입을 둘러싼 국내외 논란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핀란드 사회복지부는 6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본소득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핀란드 정부는 2017~2018년 2년간 만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약 74만원)의 기본소득(basic income)을 지급했다. 2016년 11월 실업수당을 받은 사람들 중 무작위로 선정됐다.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은 역설적으로 실업 등에 대비한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것에서 시작됐다. 핀란드 등 북유럽에선 실업수당의 임금대체율이 높다보니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실업수당에 안주하려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

핀란드 사회보험관리공단인 켈라(KELA)에 따르면 실업수당은 최소 월 724유로(96만원)이다. 하루 기준 33.66유로를 받는다. 여기에 만 18세 미만 자녀가 있거나 고용촉진서비스에 참여하면 월 1000유로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최대 500일 동안 지급받을 수 있다.

2016년 당시 핀란드 우파정부가 기본소득 제도를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업수당 규모를 줄여 사회복지지출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실업수당 대신 이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기본소득을 주되, 아무 조건도 걸지 않았다. 핀란드에선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4주마다 직업훈련현황 보고서를 제출하고, 켈라가 제공하는 훈련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실업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실업수당 대신 조건없는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취업하도록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겠다는 취지였다. 반면 노조의 지원을 받았던 야당은 기본소득 도입에 거세게 반발했다.

핀란드 정부는 2년간 시범 운영을 거친 후 실험결과를 보고 기본소득을 사회보장제도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다른 소득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이 소득을 통해 실업자들이 더 일자리를 찾을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기존에 받던 소득을 유지시켜 취업 의지가 변함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실험이었다.

당초 핀란드 정부는 지난해 2월 2017년 한 해 동안의 분석을 통한 1차 예비 조사결과를 내놨다. 이어 이번엔 실험 2년차인 2018년까지의 효과를 분석한 최종 보고서를 내놨다.

켈라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기본소득을 받은 수급자들의 1년간의 취업 효과를 분석했다. 이를 2016년 11월 기준으로 기본소득 대신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대조군과 비교했다. 조사 응답률은 23%였다. 기본소득 수급자는 전체의 31%, 대조군은 20%가 응답했다.

비교 결과 실험 첫 해엔 기본소득 수급자 그룹과 비수급자(실업수당 수급자) 그룹에서 각각 18%가 근로활동에 나섰다. 실험 2년차 때는 기본소득 수급자 27%가 취업했다. 비수급자보다 2%포인트 높은 비율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실업자를 처벌하기 시작한 결과라는 것이 켈라의 설명이다.
핀란드 사회복지부가 6일 공개한 기본소득 실험 최종결과
핀란드 사회복지부가 6일 공개한 기본소득 실험 최종결과
같은 기간 기본소득은 수급자들의 취업일수를 6일 증가시키는 데 그쳤다. 이들의 평균 취업일수는 78일이었다. 핀란드 VATT 경제연구소는 “기본소득의 취업효과는 작았다”고 인정했다. 연구소는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에겐 취업 관련 문제는 재정적 인센티브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켈라는 81명의 기본소득 수급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결과도 공개했다. 인터뷰 결과 기본소득이 취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답변이 엇갈렸다. 다만 기본소득이 수급자들의 삶의 만족도를 향상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켈라는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비수급자에 비해 삶에 더 만족했다”며 “정신적 긴장과 우울, 슬픔, 외로움을 덜 경험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크롤 헬싱키대 교수는 “실험 전 삶의 난관에 봉착했던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이노카이사 페코넨 핀란드 사회보건부 장관은 “실험에서 제공된 정보는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할 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BBC 등 외신들은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당초 목표인 실업률 개선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본소득 제도 자체가 실패했다고 단정짓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소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국내외에서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실업률 개선뿐 아니라 소비진작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핀란드 정부의 이번 실험에선 기본소득과 소비진작 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실시되지 않았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