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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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은 발명 의욕을 북돋기 위해 제정된 제56회 ‘발명의 날’이었다. 장영실이 1441년 5월 19일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든 것을 기려 이날로 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인류의 일상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발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영국 기술기업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대표적인 발명왕으로 꼽힌다. 그는 구멍 뚫린 헤어드라이어,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명을 진두지휘했다.

다이슨 창업자의 발명은 영역을 뛰어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청소기에 적용한 공기역학을 헤어드라이어에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인공호흡기도 짧은 시간에 설계부터 대량생산까지 마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이슨 창업자는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sir)를 받았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연구실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다이슨 제품은 세계 65개국에서 판매되고 있고, 2018년 기준 매출은 44억파운드(약 6조6500억원)에 달한다. 직원은 전 세계에 약 1만2500명이 있다.

5000번의 실패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 창업자, 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다이슨 창업자는 런던의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목재와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며 자연스럽게 산업 디자인에 관심을 두게 됐다. 졸업 후 엔지니어링 회사인 로토크에 취직했다. 로토크에서 무거운 화물을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는 고속 상륙선 ‘시 트럭’을 개발했다. 독자적으로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다이슨 창업자는 집에서 청소하던 중 진공청소기를 오래 사용할수록 흡입력이 저하되는 현상에 의문을 품게 됐다. 먼지봉투를 뜯어내고 먼지 흡입 구조를 분석했다. 그는 빨아들인 먼지가 먼지봉투 표면의 틈을 막으면서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먼지와 공기를 제대로 분리할 수 있는 새로운 진공청소기의 개발에 몰두했다.

다이슨 창업자는 공기를 회전시켜 톱밥을 분리하는 제재소의 시설에서 힌트를 얻었다. 5년간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했고, 1993년 오래 사용해도 흡입력이 유지되는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DC01’을 탄생시켰다. 같은 해 그는 다이슨을 세웠다. 진공청소기 DC01은 출시 18개월 만에 영국 진공청소기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가전시장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이슨 창업자는 “나는 진공청소기 산업에 뛰어들어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자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자격증이나 학위를 가진 공학도도 아니었다. 그저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에 매달린 사람일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지속적인 혁신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는 회사의 조직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다이슨 창업자가 청소기의 흡입력 저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처럼 회사 직원들도 다들 사소하게 넘기는 일상의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는 모토 아래 다이슨 직원들은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불만에서부터 모든 연구를 시작한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제품 제작과 시험 과정을 거치며 제품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디자인할 때도 제품의 기능 구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다이슨 창업자는 “제품이 제대로 작동할 때 진정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5000번이 넘는 시제품 개발 경험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낳았다. 또 시행착오는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다이슨 창업자는 본사에 이런 글귀를 적어놓도록 했다. “전기를 이용한 선풍기는 1882년 발명됐다. 날개를 이용한 그 방식은 127년간 변하지 않았다.” 2009년 다이슨은 세계 최초로 날개 없는 선풍기를 출시했다.

다이슨은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크립토믹’ 기술과 실내 곳곳에 정화된 공기를 분사하는 새로운 공기청정기술도 개발했다. 다이슨의 헤어드라이어는 인모(人毛) 1625㎞를 연구해 내놓은 결과다.

젊은 아이디어와 함께하는 엔지니어

다이슨 창업자는 2010년 회장에서 물러나며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다. “기술 개발이 더 좋다”는 그는 회사에서 최고엔지니어(CE) 자리를 선택했다. 그는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젊은 엔지니어들과 협업하는 것을 즐긴다. 지난해 9월 첫 방한 당시 연세대를 방문한 그는 “젊은이는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원한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에게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며 “이런 학생들을 만나 영감을 받고 자극받는 일을 즐긴다”고 말했다.

다이슨 창업자는 후진 엔지니어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2002년 자선단체인 ‘제임스 다이슨 재단’을 설립해 젊은 엔지니어 양성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는 매년 자신의 이름을 건 국제 디자인·엔지니어링 공모전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를 통해 전 세계 발명가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는 올해도 한국을 포함한 27개국에서 진행된다.

다이슨 창업자는 2017년 9월 직접 대학교를 설립했다. 학생들은 다이슨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게서 배울 기회를 얻는다. 다이슨 창업자는 “공학이란 학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며 “세상을 뒤흔들 만한 발명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학을 전공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