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안 하면 중국은행이 사업 대체할 것”
홍콩보안법 사태 휘말리는 외국계 기업


홍콩에 본사를 둔 영국 대형은행인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친중 인사들로부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지지하라는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보안법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HSBC의 중국사업을 중국계 은행이 대체할 수 있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다. 중국이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한국 기업을 겨냥한 보복에 나섰던 것처럼 홍콩의 외국계 기업에도 ‘사드식 보복’ 카드를 꺼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HSBC가 홍콩보안법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홍콩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압력이 몇 주 안에 계속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렁춘잉(梁振英) 전 홍콩 행정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HSBC가 홍콩보안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 편이다. HSBC가 영국 정부를 따르는지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친중인사인 렁춘잉 전 장관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홍콩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지냈다. 2014년 홍콩 우산시위 때 1000여명을 체포하고 시위대를 강제해산시키는 등 강경진압에 나섰다. 그는 지금은 전국인민대표회외와 함께 양회(兩會)로 불리는 중국 최고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렁춘잉 전 장관은 “HSBC가 중국에서 돈을 벌면서 중국의 주권과 존엄, 국민 정서를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HSBC가 홍콩에서 독특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HSBC의 중국 사업은 하루아침에 중국 등의 은행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65년 홍콩에서 설립된 영국 대형은행인 HSBC는 1991년 런던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다만 지금도 전체 순익의 절반 가량을 홍콩과 중국 본토 등 아시아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HSBC는 스탠다드차타드(SC), 중국은행과 함께 홍콩금융관리국의 승인을 받아 홍콩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3대 은행 중 하나다.

이와 관련, HSBC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HSBC를 비롯해 홍콩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홍콩보안법을 둘러싼 정치적 십자포화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FT도 지난해 홍콩 민주화시위 때 홍콩의 유명 항공사인 영국계 캐세이퍼시픽이 중국 정부로부터 받았던 방식의 압력이 다른 외국계 기업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시위가 격화되자 중국 정부는 캐세이퍼시픽 경영진측에 시위 규탄성명을 발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캐세이퍼시픽은 영국의 스와이어 가문이 대주주다. 2대 주주는 중국 국영 에어차이나다. 당시 친중 매체들은 캐세이퍼시픽 소속 승무원들이 시위에 대거 가담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일로 루퍼트 호그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