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단된 대규모 유세를 3개월여만에 재개하기로 하면서 유세 장소와 시간을 '노예 해방일', '흑인 학살지'로 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9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유세를 재개할 예정이다. 지난 3월2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유세를 끝으로 코로나 이후 중단됐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집회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두자릿 수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에 따라 대규모 유세를 통해 '세 몰이'를 해 전세를 뒤집는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시간과 장소가 도마에 올랐다. 6월19일은 노예해방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2년여가 지난 1865년 6월19일 텍사스에 마지막으로 노예 해방의 소식이 전해진 걸 기념하는, 흑인들에겐 뜻 깊은 날이다.

유세 장소인 털사는 1921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 동네를 상대로 학살을 저지른 곳이다. 희생자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300여명에 이를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백인들이 개인 항공기를 동원해 폭발물까지 투하하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은 끝에 1만명 가까운 흑인들이 집과 재산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듯한 발언을 자주 해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필이면 '노예 해방일'에 '흑인 학살지'에서 유세를 하는 건 역사적 맥락에 무감각하거나 도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흑인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11일 트윗에서 “이건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윙크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원 흑인의원 그룹을 이끄는 캐런 배스 민주당 의원은 "털사 인종 폭동에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결례"라며 "게다가 그는 노예해방일을 택했다. 말도 안되고 흑인을 또 모욕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 문제에 있어 믿을 만한 메신저가 아니고 인종을 개인적이거나 정치적 이익에 무기로 써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태로 촉발된 전국적인 인종차별 항의 시위 때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해 비판을 받았다.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육군 기지명 변경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백인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