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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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일 주둔 미군 감축계획이 확정됐다는 전직 고위외교관의 주장이 독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주독미군 감축이 검토되고 있지만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는 독일 정부의 발표를 부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해 거센 파장이 예상된다.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11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빌트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 납세자들은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며 “미군 감축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캠프에 합류하기 위해 이달 초 사임한 그리넬 전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힌다.

앞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을 오는 9월까지 9500명 감축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 백악관은 “지금은 발표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당초 관련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부인했던 독일 정부는 지난 10일 총리실 대변인을 통해 “미국 정부가 감축을 검토 중이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우리가 아는 한 최종 결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리넬 전 대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미군은 독일에서 일부 철군할 계획”이라며 “독일에는 여전히 2만5000명의 미군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은 육군 2만7744명, 공군 1만2980명 등 3만4674명이다.

이 중 9500명을 감축해 2만5000명을 독일에 남겨놓을 계획이라는 것이 그리넬 전 대사의 설명이다. 독일은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의 핵심 거점이다. 남부 슈투트가르트엔 미군의 유럽사령부가 있다. 그는 “독일에 남는 2만5000명이라는 미군 숫자도 적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넬 전 대사는 이번 철수결정의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앙금이 있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메르켈 총리는 당초 이달 미국 워싱턴에서 예정됐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불참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통보하면서 양국 정상 관계가 악화됐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그리넬 전 대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트럼트 대통령이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에 대해 아무도 놀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서도 주독 미군 철수문제가 논의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독일 등 ‘부자 나라’를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며 방위비 인상을 압박해 왔다. 지난 2년간 주독 대사로 재임한 그리넬 전 대사도 임기 내내 독일의 방위비 지출을 늘릴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리넬 전 대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재배치 계획을 일환으로 독일에 이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및 한국과 일본에서도 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철수 규모 및 일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는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진통을 겪고 있다.

다만 주한미군은 미 국방수권법에서 현행 2만8500명 이하로 줄이는 걸 제한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감축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기 위해선 미 의회의 설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