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일본에서 중산층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2일 CNBC에 따르면 경제 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시게토 나가이 일본경제연구 실장은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시게토 실장은 “일본에서 중산층이 적어지고, 저소득층 비중은 높아지는 추세”라며 “소득이 상위 계층에 집중되거나 불평등이 크게 확대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소득이 줄어 빈곤층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 가계 소득은 모든 계층에 걸쳐 줄었다. CNBC에 따르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일본에서 중위소득 50% 미만인 빈곤층 가구 비율은 15.7%에 이른다. OECD 회원국 평균(11.4%)보다 높다. 시게토 실장은 “일본 기업은 그간 성장보다 고용 안정을 추구했다”며 종신 정규직 제도, 연공서열 임금제 등 경직된 고용체계가 저성장을 몰고왔다고 지적했다. 1950~1960년대 고성장기에 흔히 도입된 종신 정규직 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종신 정규직 제도로 인해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은 취직해도 생산성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각 기업이 종신 정규직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어 비정규직을 늘린 것도 전체적으로 소득이 줄어든 이유다. 일본 기업들은 수년간 시간제 근로자를 늘려왔다. 일본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연간 비정규직은 2.1% 늘어 정규직 증가율(0.5%)을 크게 앞질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통상 정규직보다 적다.

지지부진한 임금 상승률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시게토 실장은 “일본 기업은 연공서열로 급여를 결정한다”며 “서구식 급여 체계와 달리 일본에선 특정 기간 실적이나 생산성 향상에 대한 보상이 따로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간 2%에도 못 미치는 저물가도 임금 상승을 억누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은행 등이 저금리와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수혜자는 대개 부동산이나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라며 “일본 일반 근로자들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득이 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게토 실장은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일본 내수가 더 침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은 작년 10월 판매세 인상 이후 소비지출이 급감했다. 여기에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심리가 더 꺾였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 4월 일본 가계소비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2인 이상 가구당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1% 줄었다. 시게토 실장은 “그간 일본의 고용 개혁은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다”며 “고용 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등 기업과 경영진이 빨리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고용 안정만 추구하면서 ‘모두 공평하게 가난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시게토 실장은 일본 노동시장이 보다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사회보험과 세금 제도 등 각 부문에서 종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을 활성화하면 젊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임금을 높이고, 일부 젊은이는 구직 대신 아예 창업을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