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코로나 예산 90% 소진
개인·기업 줄줄이 '파산 공포'
개표 지연으로 승자 확정 늦어지면
추가 부양책 타결 안돼 '대혼란'
2000년 대선 당시 승복 때까지
한달간 나스닥 17% 넘게 떨어져
"불복·소송전땐 금융시장 요동
주가 추락·달러 약세 부추길 수도"
3일 미 대선의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미국인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를 잃은 개인과 매출이 쪼그라든 기업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추가 경기부양책이 앞으로 두 달여 동안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져서다. 대선 결과 개표가 지연되거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혹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 혼란+트윈데믹+기업 파산 공포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이 올해 안에 나오지 않으면 수많은 개인 및 기업이 사지로 몰릴 것이라는 위험신호가 미 전역에서 깜빡거리고 있다. 미 연방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올 들어 미 의회에서 승인된 2조7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 예산 중 90%가량인 2조4000억달러가 이미 소진됐다. 하지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경기부양책 규모를 놓고 현재까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생각하는 경기부양책 규모가 큰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양측 모두 대선 전에 서둘러 경기부양책을 승인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은 의회가 레임덕 상태에 빠지는 대선 뒤에 경기부양책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대선부터 대통령 취임까지 미 정치가 마비되고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편투표 용지가 언제 도착하느냐를 두고 유효표로 할지 무효표로 할지 등 대선 결과를 놓고 정치권이 혼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승자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경기부양책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캠프가 있을 경우 미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이어질 정치적 혼란, 겨울철을 맞아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 추가 경기부양책을 기다리는 개인과 기업의 파산 등 ‘퍼펙트 스톰’이 닥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경기부양책이 조속히 미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여행, 항공, 외식업 등 코로나19 피해 업종 기업들이 파산하고 해고 근로자 수가 증가할 전망이다. 미 연방정부로부터 추가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실업자들의 경제적 위험도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경제에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0년 대선 악몽 기억하는 월가
월가는 대선 승자 확정이 늦어질 경우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지 W 부시 당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전 부통령(민주당 후보)이 맞붙었던 2000년 대선 당시의 경험 때문이다. 고어 전 부통령은 플로리다주 재검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대선 결과에 불복했다. 미 연방대법원이 재검표가 미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하고 고어 전 부통령이 승복하기까지 한 달여 동안 나스닥지수는 17% 이상 하락했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도 떨어졌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점을 확실히 증명한 사례다.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며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대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 집계 전 승리를 선언하고, 거리에는 폭력과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럴 경우 주가 하락, 미 국채 수익률 하락, 금 가격 인상을 예상했다. 특히 미 증시에서는 대선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S&P500지수 등이 10%가량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0년 당시에는 7% 떨어졌다.
루비니 교수는 미국의 정치적 혼란이 달러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고 봤다. 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이번에 하락장이 온다면 내 78년 인생 중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좋은 투자처를 찾기 위한 월가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최근 투자자들에게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싹쓸이하는 ‘블루웨이브’가 오게 되면 강소기업 투자가 유망하다고 조언했다.
올해 증시 랠리를 이끈 대형 기술주의 경우 민주당의 반독점 제재 등의 위험이 있는 반면 소재 등 강소기업들은 인프라 투자 확대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