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75년간 68개 정부…이탈리아 정치 위기 왜 반복되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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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할 정도의 정당 난립에 잦은 연정 붕괴 막을 견제 장치 없어
독재자 출현 막는 권력 분산 시스템 속 안정적 정치 질서는 실종
이탈리아가 연립정부의 붕괴로 다시 한번 정부가 교체될 운명에 처하며 수십년간 이어진 고질적인 정치 위기를 답습하는 모습이다.
반체제정당 오성운동(M5S), 중도좌파 민주당(PD)과 함께 연정을 운영해온 중도당 '생동하는 이탈리아'(IV)가 지난 13일 연정 이탈을 선언했고, 주세페 콘테 총리가 26일 사임계를 내며 1년 4개월간 이어진 연정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콘테 총리의 사임은 2018년 6월 취임 이후 두번째다.
2019년 8월 극우 정당 동맹이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탄 내며 정국 위기를 몰고 왔을 당시와 닮은 양태다.
이탈리아는 1946년 공화국 수립 이래 75년간 무려 68개의 정부를 거쳤다.
정부당 평균 존속 기간은 13개월에 불과하다.
이번 정국 위기가 수습돼 69번째 정부가 들어서면 또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은 도드라진다.
최근 30년간 새로 취임한 이탈리아 총리는 13명으로 스페인·스웨덴(5명), 독일(3명)보다 월등히 많다.
정부 형태는 다르지만, 이웃 프랑스 역시 해당 기간을 거쳐간 대통령이 5명에 불과했다.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이 유독 심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도한 다당제 시스템이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탈리아 의회는 상원(321명·비선출직 종신 의원 6명 포함)과 하원(630명)으로 나뉜다.
합종연횡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 및 정치 그룹 수는 크게 상원은 9개, 하원은 8개로 정리된다.
순수하게 정당 수로만 따지면 상·하원 모두 10개가 훨씬 넘는다.
이처럼 많은 정당이 난립하면 한 개 정당이 의회 과반을 점하기 쉽지 않다.
결국은 2개 혹은 3개 이상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화국 수립 이래 줄곧 반복돼온 일이다.
이념적 지향과 지지 기반, 정책 목표 등이 다른 복수의 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면 내분과 갈등으로 오래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콘테 총리가 이끄는 2개의 정부가 모두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단적인 예다.
이런 다당제 구조는 이탈리아 중·근세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터전인 이탈리아는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지만, 통일국가가 수립된 것은 200년이 채 안 된다.
1861년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영토로 하는 통일국가가 만들어졌으니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보다도 젊은 셈이다.
그전에는 교황령 국가를 포함해 수많은 지역 국가로 쪼개져 자생했다.
이는 이탈리아가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유하게 된 원천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지역 단위의 정당이 난립하는 배경이 됐다.
이탈리아는 지역에 기반한 소수 정당 난립을 막고자 개별 정당 기준으로 전국 득표율 3% 이상, 연합정당은 10% 이상이어야 원내 진입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 2018년 총선에 처음 적용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남북문제까지 더해져 정치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우파연합의 수장 동맹은 원래 부유한 북부지역의 분리·독립을 기치로 내걸고 1981년 출범한 지역 정당 '롬바르디아 자치 동맹'이 그 모태다.
북부에 비해 빈곤한 남부지역 주민은 또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치 정당에 의지한다.
2018년 총선에서는 기본 월 소득 보장과 연금 혜택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건 오성운동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처럼 지역별 투표 성향이 반영된 당시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된 오성운동과 2당의 지위에 오른 동맹이 손을 잡고 연정을 구성했으나 지속 기간은 1년 2개월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다당제 구조가 1990년대부터 더 심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전에는 중도 정당인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소수 정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와 함께 공산당이 몰락하고 기독교민주당도 1992년 시작된 대대적인 부정부패 수사인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의 직격탄을 맞아 와해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정치 질서가 수립됐다.
공산당은 여러 좌파 정당으로 쪼개졌고, 우파 쪽도 미디어계 거물이자 재벌 총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전진이탈리아(FI)를 창당하는 등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현존하는 많은 정당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대체로 1990년대 정치 질서에서 태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1990년대 초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제1공화국', 그 이후를 '제2공화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정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아무런 안전장치를 두지 않은 것 역시 정국 위기가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거론된다.
독일이나 스페인과 같은 유럽의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정부 위기 시 어느 정치 세력이 차기 정부를 맡을지 대한 의회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정부 교체가 가능하다.
정부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을 막고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는 나름의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런 장치가 없다.
손발이 맞지 않으면 일단 정부를 무너뜨리고 보는 게 연정 구성 정당의 일관된 패턴이었다.
이 때문에 연정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의회에서도 소수 정당에 불과한 IV가 이번에 연정을 무너뜨린 것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총리는 내각을 통할하는 행정수반이자 실질적인 국가 운영 책임자지만 다른 내각책임제 국가들과 비교하면 그 정치적 권한이나 권력이 그리 크지 않다.
1948년 제정된 헌법에 기초한 이탈리아 정치시스템은 권력 분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도적으로 그 누구도 일정 수준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이탈리아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넣은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의 유산이다.
헌법을 만들 당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시는 무솔리니같은 독재자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의회가 똑같은 권한을 갖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탈리아 정치의 비효율성을 지적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전쟁 등과 같은 비상 상황을 제외하고 이탈리아 총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항상 의회의 눈치를 봐야하는 게 이탈리아 총리의 숙명이다.
반대로 이탈리아의 대통령은 의외로 그 역할이 크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정국 위기시에는 총리 지명권과 의회 해산권, 총선 요구권 등의 실질적이고 매우 중요한 권한을 지닌다.
의회에서 승인한 법안을 공식 발효시킬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
내각제 국가의 대통령은 통상 상징적인 국가원수 역할에 머무는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정밀하게 구축한 권력 분산 시스템으로 전체주의 또는 권위주의 정부 출현을 저지하는 데는 대체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잦은 정치 위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 정치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부 교체가 있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면서 "이탈리아는 독재를 피하고자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제도화했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독재자 출현 막는 권력 분산 시스템 속 안정적 정치 질서는 실종
이탈리아가 연립정부의 붕괴로 다시 한번 정부가 교체될 운명에 처하며 수십년간 이어진 고질적인 정치 위기를 답습하는 모습이다.
반체제정당 오성운동(M5S), 중도좌파 민주당(PD)과 함께 연정을 운영해온 중도당 '생동하는 이탈리아'(IV)가 지난 13일 연정 이탈을 선언했고, 주세페 콘테 총리가 26일 사임계를 내며 1년 4개월간 이어진 연정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콘테 총리의 사임은 2018년 6월 취임 이후 두번째다.
2019년 8월 극우 정당 동맹이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탄 내며 정국 위기를 몰고 왔을 당시와 닮은 양태다.
이탈리아는 1946년 공화국 수립 이래 75년간 무려 68개의 정부를 거쳤다.
정부당 평균 존속 기간은 13개월에 불과하다.
이번 정국 위기가 수습돼 69번째 정부가 들어서면 또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은 도드라진다.
최근 30년간 새로 취임한 이탈리아 총리는 13명으로 스페인·스웨덴(5명), 독일(3명)보다 월등히 많다.
정부 형태는 다르지만, 이웃 프랑스 역시 해당 기간을 거쳐간 대통령이 5명에 불과했다.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이 유독 심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도한 다당제 시스템이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탈리아 의회는 상원(321명·비선출직 종신 의원 6명 포함)과 하원(630명)으로 나뉜다.
합종연횡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 및 정치 그룹 수는 크게 상원은 9개, 하원은 8개로 정리된다.
순수하게 정당 수로만 따지면 상·하원 모두 10개가 훨씬 넘는다.
이처럼 많은 정당이 난립하면 한 개 정당이 의회 과반을 점하기 쉽지 않다.
결국은 2개 혹은 3개 이상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화국 수립 이래 줄곧 반복돼온 일이다.
이념적 지향과 지지 기반, 정책 목표 등이 다른 복수의 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면 내분과 갈등으로 오래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콘테 총리가 이끄는 2개의 정부가 모두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단적인 예다.
이런 다당제 구조는 이탈리아 중·근세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터전인 이탈리아는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지만, 통일국가가 수립된 것은 200년이 채 안 된다.
1861년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영토로 하는 통일국가가 만들어졌으니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보다도 젊은 셈이다.
그전에는 교황령 국가를 포함해 수많은 지역 국가로 쪼개져 자생했다.
이는 이탈리아가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유하게 된 원천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지역 단위의 정당이 난립하는 배경이 됐다.
이탈리아는 지역에 기반한 소수 정당 난립을 막고자 개별 정당 기준으로 전국 득표율 3% 이상, 연합정당은 10% 이상이어야 원내 진입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 2018년 총선에 처음 적용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남북문제까지 더해져 정치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우파연합의 수장 동맹은 원래 부유한 북부지역의 분리·독립을 기치로 내걸고 1981년 출범한 지역 정당 '롬바르디아 자치 동맹'이 그 모태다.
북부에 비해 빈곤한 남부지역 주민은 또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치 정당에 의지한다.
2018년 총선에서는 기본 월 소득 보장과 연금 혜택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건 오성운동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처럼 지역별 투표 성향이 반영된 당시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된 오성운동과 2당의 지위에 오른 동맹이 손을 잡고 연정을 구성했으나 지속 기간은 1년 2개월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다당제 구조가 1990년대부터 더 심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전에는 중도 정당인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소수 정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와 함께 공산당이 몰락하고 기독교민주당도 1992년 시작된 대대적인 부정부패 수사인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의 직격탄을 맞아 와해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정치 질서가 수립됐다.
공산당은 여러 좌파 정당으로 쪼개졌고, 우파 쪽도 미디어계 거물이자 재벌 총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전진이탈리아(FI)를 창당하는 등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현존하는 많은 정당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대체로 1990년대 정치 질서에서 태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1990년대 초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제1공화국', 그 이후를 '제2공화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정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아무런 안전장치를 두지 않은 것 역시 정국 위기가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거론된다.
독일이나 스페인과 같은 유럽의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정부 위기 시 어느 정치 세력이 차기 정부를 맡을지 대한 의회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정부 교체가 가능하다.
정부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을 막고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는 나름의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런 장치가 없다.
손발이 맞지 않으면 일단 정부를 무너뜨리고 보는 게 연정 구성 정당의 일관된 패턴이었다.
이 때문에 연정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의회에서도 소수 정당에 불과한 IV가 이번에 연정을 무너뜨린 것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총리는 내각을 통할하는 행정수반이자 실질적인 국가 운영 책임자지만 다른 내각책임제 국가들과 비교하면 그 정치적 권한이나 권력이 그리 크지 않다.
1948년 제정된 헌법에 기초한 이탈리아 정치시스템은 권력 분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도적으로 그 누구도 일정 수준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이탈리아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넣은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의 유산이다.
헌법을 만들 당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시는 무솔리니같은 독재자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의회가 똑같은 권한을 갖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탈리아 정치의 비효율성을 지적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전쟁 등과 같은 비상 상황을 제외하고 이탈리아 총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항상 의회의 눈치를 봐야하는 게 이탈리아 총리의 숙명이다.
반대로 이탈리아의 대통령은 의외로 그 역할이 크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정국 위기시에는 총리 지명권과 의회 해산권, 총선 요구권 등의 실질적이고 매우 중요한 권한을 지닌다.
의회에서 승인한 법안을 공식 발효시킬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
내각제 국가의 대통령은 통상 상징적인 국가원수 역할에 머무는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정밀하게 구축한 권력 분산 시스템으로 전체주의 또는 권위주의 정부 출현을 저지하는 데는 대체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잦은 정치 위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 정치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부 교체가 있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면서 "이탈리아는 독재를 피하고자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제도화했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