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제재 대상과 거래한 외국 금융기관 제재" 선명한 경고
중국은 "美 제재 집행하지 말라"…홍콩·중국 금융기관 '딜레마'
바이든도 꺼낸 '세컨더리 보이콧'…홍콩 선거 개편에 중국 제재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강력한 금융 분야 '세컨더리 보이콧'(제삼자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 본토와 홍콩에서 영업하는 각국 금융기관에 미국의 제재를 따르지 말라고 요구해 미국과 중국의 상충된 요구 사이에서 금융기관들의 고민도 커졌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17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부위원장 12명을 포함한 중국과 홍콩 고위 관리 총 24명을 작년 제정된 홍콩자치법(HKAA)에 따른 금융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이는 중국이 홍콩 야권에 크게 불리한 방향으로 홍콩 선거 제도를 크게 바꾸기로 한 데 따른 '징벌'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이들 전원은 이미 작년 미국 재무부의 별도 제재 명단에 오른 이들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제재로 미국의 대중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측근인 샤바오룽(夏寶龍)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장관급)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등 중국 본토와 홍콩 고위 관리 10명을 홍콩자치법에 따른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따라서 미국의 이번 조처로 홍콩자치법에 따른 제재 명단은 기존의 10명에서 34명으로 대폭 확대됐다.

홍콩자치법에 따른 제재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재 대상과 거래한 제3국 금융기관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번 제재 발표 성명에서 "외국 금융 기관이 오늘 보고서 목록에 오른 개인들과 알면서도 중요한 거래(significant transactions)를 하면 이제는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재무부 차원의 제재로는 미국 내 자산 동결, 미국 방문 및 미국인과 거래 금지 등이 가능한데 이는 미국에 갈 일이 없거나 미국 내 재산이 없는 중국과 홍콩 관리를 압박하는 효과가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뤄후이닝(駱惠寧)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주임은 작년 8월 자신이 미 재무부의 제재 명단에 오르자 "100달러를 (미국에) 부쳐 동결하게 할 수 있다"면서 조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 미국의 요구대로라면 중국과 홍콩을 포함한 세계 모든 금융기관이 리스트에 오른 중국과 홍콩 관리 34명과 거래를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돼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중국과의 새 관계 맺기를 모색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처음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고강도 카드를 집어 든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의 최근 움직임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자의 대중 강경 접근법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의 결심 여부에 따라 '핵 버튼'에 비교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은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정권 계좌를 동결하면서 BDA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에 따라 세계 모든 금융 기관이 BDA와 거래를 기피하고 고객들이 대량으로 현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은행은 즉각 파산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이미 홍콩에서는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람 장관은 작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의 은행이 자신과 거래를 거부해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 집에 쌓아놓고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고 무력화에 나선 상황이어서 양국 간에 본격적인 힘겨루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미국의) 제재는 (중국과 홍콩의) 금융 기관들에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못한다"며 "금융 기관들은 미국의 어떠한 압력에도 정상적이고 원활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최고위 금융 당국자도 최근 공개적으로 자국과 홍콩 금융기관이 미국의 제재 이행에 협조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궈수칭(郭樹淸)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장관급)은 2일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금융 기관은 중국 계열이든, 외국 계열이든 반드시 홍콩의 법률과 법규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무력화를 목표로 한 법적 장치도 도입했다.

중국 정부는 1월 '상무부령인 '외국 법률·조치의 부당한 역외 적용 저지 방법(규정)'을 발표했는데 이 규정의 핵심 내용은 미국의 대중 제재를 일절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이 규정에는 미국의 제재로 경제적 손해를 본 중국의 개인이나 기업이 해당 제재를 이행한 상대방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중국 법원에 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