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대사 다시 쓸 수도"…쓰촨성서 3000년 전 황금가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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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중국 문명 발원지인 '중원'과는 떨어진 고립된 지역이었던 중국 남서부 쓰촨성의 고대 유적지에서 희귀한 황금 가면을 비롯한 유물 500여점이 대거 발견됐다.
학계에선 중원과 떨어진 미지의 문명이 있던 지역에서 고도로 정교한 유물이 발견된 것을 두고, 중원 중심의 중국 고대사가 새로 쓰일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2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문화재 당국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규모 발굴 작업 결과 싼싱두이 유적지의 '제사갱' 6곳에서 황금 가면, 청동기, 옥기, 상아 장식품 등 유물 500여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선 특히 3000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가면이 눈에 띈다. 황금 가면의 크기는 폭과 높이가 각각 23㎝, 28㎝이며 무게는 280g가량이다. 금 순도는 약 84%로 조사됐다. 얼굴 한쪽 부분 일부가 사라졌지만 비교적 온전한 상태다.
학계는 중국 역사 본류와 거리가 있는 싼싱두이 유적지에서 제사장이 종교의식 때 썼을 가능성이 있는 황금 가면을 비롯해 고도로 정교한 유물들이 대거 나온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발굴팀에 따르면 이 황금 가면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전체 무게가 약 500g을 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쓰촨성 광한시에 있는 싼싱두이 유적지는 신석기부터 고대 은나라에 해당하는 시기까지 약 2000년에 걸친 시대의 흔적을 보전한 곳으로 1934년 첫 발굴이 시작된 곳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중국 학계에서도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쓰촨성은 지리적으로 중국 역사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중원과 산맥으로 분리돼 있다. 싼싱두이 유적지가 있는 현재의 쓰촨성 일대가 중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것은 기원전 316년 진나라에 정복된 이후부터다.
스진쑹 중국사회고학원 고고학연구소 부소장은 "오랫동안 중원은 가장 문명이 발달한 세계의 중심으로, 외부에 사는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출토된 대규모 유물은 중국 문명사가 이같은 전통적 관념보다 훨씬 복잡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이처럼 새롭게 조명받는 싼싱두이 문화를 자국의 역사와 문화의 일부로 포섭하는 학술 작업에 나설 수도 있다. 중국은 현재 주류로 간주하는 한족 외 다른 소수 민족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중국의 역사로 포함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SCMP는 "싼싱두이 유적지는 중국 고고학계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며 "여기서 발견된 유물들은 후대의 중국 문화와는 눈에 띄는 연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곳 유물의 상징을 해독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스터리한 문명의 보물들은 중국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다"며 "쓰촨성에서 출토된 정교한 공예품들은 (황허 중심의) 전통적 서사에 도전하는 선진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학계에선 중원과 떨어진 미지의 문명이 있던 지역에서 고도로 정교한 유물이 발견된 것을 두고, 중원 중심의 중국 고대사가 새로 쓰일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2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문화재 당국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규모 발굴 작업 결과 싼싱두이 유적지의 '제사갱' 6곳에서 황금 가면, 청동기, 옥기, 상아 장식품 등 유물 500여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선 특히 3000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가면이 눈에 띈다. 황금 가면의 크기는 폭과 높이가 각각 23㎝, 28㎝이며 무게는 280g가량이다. 금 순도는 약 84%로 조사됐다. 얼굴 한쪽 부분 일부가 사라졌지만 비교적 온전한 상태다.
학계는 중국 역사 본류와 거리가 있는 싼싱두이 유적지에서 제사장이 종교의식 때 썼을 가능성이 있는 황금 가면을 비롯해 고도로 정교한 유물들이 대거 나온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발굴팀에 따르면 이 황금 가면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전체 무게가 약 500g을 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쓰촨성 광한시에 있는 싼싱두이 유적지는 신석기부터 고대 은나라에 해당하는 시기까지 약 2000년에 걸친 시대의 흔적을 보전한 곳으로 1934년 첫 발굴이 시작된 곳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중국 학계에서도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쓰촨성은 지리적으로 중국 역사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중원과 산맥으로 분리돼 있다. 싼싱두이 유적지가 있는 현재의 쓰촨성 일대가 중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것은 기원전 316년 진나라에 정복된 이후부터다.
스진쑹 중국사회고학원 고고학연구소 부소장은 "오랫동안 중원은 가장 문명이 발달한 세계의 중심으로, 외부에 사는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출토된 대규모 유물은 중국 문명사가 이같은 전통적 관념보다 훨씬 복잡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이처럼 새롭게 조명받는 싼싱두이 문화를 자국의 역사와 문화의 일부로 포섭하는 학술 작업에 나설 수도 있다. 중국은 현재 주류로 간주하는 한족 외 다른 소수 민족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중국의 역사로 포함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SCMP는 "싼싱두이 유적지는 중국 고고학계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며 "여기서 발견된 유물들은 후대의 중국 문화와는 눈에 띄는 연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곳 유물의 상징을 해독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스터리한 문명의 보물들은 중국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다"며 "쓰촨성에서 출토된 정교한 공예품들은 (황허 중심의) 전통적 서사에 도전하는 선진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