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지속할 것이란 건 이제 비밀이 아닙니다. 월가 관계자는 "만약 이대로 물가가 계속 높아진다면 파국이 올 수 있으므로 그저 모두가 '일시적'으로 유지된 뒤 내년에라도 낮아지길 기원하고 있다. 미 중앙은행(Fed) 제롬 파월 의장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말이 '말이 안 된다'라고 보면서도 그의 말을 따르고 연임하길 바라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파월 의장도 이제 조금씩 어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9∼30일 의회 증언에서 언제 인플레이션 압력이 진정될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알약 하나로 급반등했지만…"변동성 이어질 것"
1일(현지시간) Fed가 가장 중시하는 물가지표인 8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가격지수에서도 이런 우려가 드러났습니다. 8월 근원 PCE 물가는 전월보다 0.3%, 전년 동월보다 3.6% 높게 나왔습니다. 시장 예상(0.2%, 3.5%)보다 살짝 높았을 뿐 아니라 지난 7월과 같았습니다. 또 에너지와 식료품까지 포함해 산출한 8월 PCE 물가는 전월보다 0.4%, 전년 동월보다 4.3% 각각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지표는 7월(0.4%, 4.3% 상승)보다 더 높습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채권전략가는 "8월 소비자물가(CPI)와는 달리 PCE 물가에서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모습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이날 발표된 9월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서도 세부지수 가운데 비용 지불지수는 81.2로 8월 79.4보다 상승했습니다. 도매물가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미시간대가 내놓은 9월 소비자태도지수 조사에서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단기(1년) 4.6%, 중장기(5~10년) 3%에 달해 지난달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모두 Fed의 물가 목표치 2%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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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도 30일 발표된 독일의 9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4.1% 올라 동서독 통일로 물가가 급등했던 1993년 12월(4.3%) 이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말에만 해도 마이너스를 기록했었습니다. 독일연방은행은 연내 물가상승률이 5%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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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천연가스의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천연가스 선물은 오랜만에 떨어졌습니다. 메가와트시당 95.76유로로 2.4% 하락했습니다. 이는 원유로 환산하면 약 112달러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원유가는 이날도 상승했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이 감산을 검토한다는 소식에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85센트(1.1%) 오른 배럴당 75.88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WTI 가격은 한 주간 2.6%가량 상승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급등세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 자극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물가는 상승하는데 성장은 정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물가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날 1.528%에서 이날 1.476%로 떨어졌습니다. 한때 1.466%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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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부채한도 여진이 이어진 탓입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30일 밤늦게까지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초당적 인프라 법안을 하원 표결에 부치려 노력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당내 진보파들이 자신들이 밀고 있는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을 먼저 통과시키지 않으면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물러서지 않아서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오후 직접 의회를 방문해 의원들을 설득할 정도로 당내 갈등이 큽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가 진보와 중도 모두를 설득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3조5000억 달러 인프라 예산안의 경우 2조 달러 수준의 타협안이 거론된다고 보도했습니다. AP는 대통령과 민주당이 교착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민주당은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공화당 협조는 기대하기 어렵고, 당이 두 개로 찢어져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부채한도 해결이 어렵습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경고한 18일이 3주도 남지 않았지만, CNBC는 "지금 의회에선 부채한도 논의는 전혀 없다. 모든 게 인프라 법안에 집중되어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날 오전 경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부채한도를 둘러싼 미 의회의 벼랑 끝 전술이 현재 'AAA'인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피치는 부채한도가 상향되거나 유예될 것으로 믿고 있지만, 정치인들의 '벼랑 끝 전술'이 미국의 파산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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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관계자는 "피치의 경고가 채권 가격 랠리를 불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금리가 크게 내려간 이유입니다.

사실 전날 S&P도 경고를 내놓았었죠.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혹독하고 놀라운' 결과가 생길 것이란 것이었습니다. S&P는 미국과 같은 선진 주요 7개국(G7) 국가가 국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S&P는 지난 2011년 공화당과 민주당 간 정쟁으로 부채한도 이슈가 불거졌던 7월 14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5일 정말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상위(AAA)에서 현재의 'AA+'로 한 단계 낮췄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AA+' 등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S&P와 피치의 경고가 그냥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알약 하나로 급반등했지만…"변동성 이어질 것"
부채한도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디폴트 가능성은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Fed가 운영하는 역환매조건부채권(Reverse Repo) 시장에는 지난 30일 1조6000억 달러가 몰렸습니다. 우리나라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규모의 돈이 몰려든 겁니다. 이 전에는 최대가 1조3000억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르네상스매크로는 "월가 은행들이 남아도는 달러를 3개월물 단기 국채(T-bill) 등에도 운용해왔는데 채무불이행 우려가 불거지자 그 돈까지 역레포 창구로 돌리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월가 전문가 대부분은 오는 10월 말까지 부채한도 이슈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달러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18일쯤 되면 코너에 몰린 민주당이 더 이상 공화당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 단순과반수로 통과시킬 수 있는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부채한도를 유예시킬 것이란 예상이 많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크리스 하이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금 시장을 덮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부채한도 이슈다. 시장은 최근처럼 다음 주와 아마도 10월 중순까지 계속 변동성이 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어제 (자체) 데드라인까지 당내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옐런 장관은 이미 10월18일에 연방정부 자금이 소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과거에도 여러 번 부채한도를 둘러싼 대결을 목격했으며 2011년에 어려운 일을 겪었다. 당시 시장은 고점에서 18%까지 급락했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들은 결국 막판에는 부채한도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이게 제대로 될지 지켜봐야 한다. 모든 게 해결될 때까지는 시장은 당분간 단기 압박을 받으면서 짙은 먹구름 아래 머물 것이다. 투자자들은 몇 주간 상황이 더 명확해질 때까지 계속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우리 생각에 이런 관망세는 단기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캐피털그룹의 매트 밀러 정치경제학자는 "결국 부채한도는 민주당 혼자 높여야 할 것"이라며 "월가 컨센서스 뷰는 아니지만 나는 이번 부채한도 위기가 사소한 게 아니리라 생각하며 금세 해결되지 않을 확률을 10~15% 정도로 본다"라고 밝혔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알약 하나로 급반등했지만…"변동성 이어질 것"
이날 뉴욕 증시는 이런 모든 부정적 소식들을 이겨내고 급등했습니다. 다우는 1.43%, S&P500은 1.15% 상승했고 나스닥은 0.82% 오른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머크의 경구용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 소식이 전해진 덕분입니다. 머크와 리지백 바이오테라퓨틱스가 개발한 경구용 항바이러스제 '몰누피라비르'는 임상시험 결과 코로나 환자의 입원 가능성을 절반으로 낮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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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또는 중간 정도 증세를 보이는 감염 5일 이내의 코로나 환자 775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을 진행했는데 이 약을 먹은 환자는 7.3%가 병원에 입원했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플라시보(가짜약)을 복용한 환자는 입원율이 14.1%에 달했고 8명이 사망했습니다.

머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미 식품의약국(FDA)에 이 알약의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올해 말까지 1000만 명 투약분을 생산하고, 내년엔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약이 승인되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첫 번째 알약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일부에선 조류인플루엔자 공포를 없앤 타미플루에 비유해 '코로나의 타미플루'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스콧 코틀립 전 FDA 국장은 CNBC 인터뷰에서 "이것은 경이로운 결과다.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 이 정도 효과가 있는 경구용 알약은 '중대한 게임체인저'"라고 말했습니다. 경쟁사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최고경영자(CEO)도 "머크로부터 굉장한 뉴스가 나왔다. 승인된다면 팬데믹 충격을 줄이는데 또 다른 핵심적인 개발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습니다.

월가의 반응도 긍정적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에버코어ISI의 우머 라펫 애널리스트도 "이 알약은 게임체인저다. 임상 데이터가 정말 좋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경구용 알약은 사용 용이성과 제조 규모 면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 판도를 바꿀 만큼 '빅 딜'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모건스탠리의 매튜 해리슨 의약 담당 애널리스트는 "임상 테이터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환자와 대중의 광범위한 위험 인식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알약 하나로 급반등했지만…"변동성 이어질 것"
이날 임상 결과가 나오자 머크의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8.4% 급등했습니다. 또 경제활동이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에 카니발 4.32%, 로열캐리비안 3.8% 등 크루즈 주와 델타항공 6.5% 아메리칸항공 5.5% 등 항공 주, 부킹닷컴 3.45% 익스피디아 3.59% 등 여행 주가 폭등했습니다. 디즈니 4.0%와 라스베이거스샌즈 4.3%, 보잉도 2.76% 상승했습니다. 반면 백신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에 모더나는 11.4%, 바이오엔텍은 6.7% 급락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머크의 치료제 개발은 불투명하던 세계 경기 회복 및 향후 기업 이익에 대한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고 문제가 되는 세계적인 공급망 혼란도 빨리 개선할 수 있다"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날 나온 경제 지표는 미국의 경기가 델타 변이로 인한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음을 확인시켜줬습니다. ISM 9월 제조업 PMI는 61.1로 8월 59.9보다 상승했으며 미시간대 소비자태도 지수도 전달의 70.3에서 72.8로 올랐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알약 하나로 급반등했지만…"변동성 이어질 것"
이날 3분기 자동차판매량이 전년 동기에 비해 33% 급감했다고 발표한 GM은 생산에 타격을 준 반도체 공급 부족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GM은 “4분기에는 차량이 꾸준히 딜러들에게 공급될 것이다. 좀 더 안정적인 운영 환경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GM은 북미의 모든 풀사이즈 픽업, 풀사이즈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및 중형 픽업트럭 공장이 이번 주부터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알약 하나로 급반등했지만…"변동성 이어질 것"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지난달에 S&P500 지수는 7개월 연속 상승세를 끝내고 마침내 비관론자들이 예고해온 5% 조정을 받았다. 이제 더 그런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그게 더 좋을 수 있다. 계속 말하지만 1년 중 시장의 정점이 9월 중순 이전에 찍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종종 9월 10월은 불안할 수 있으며 4분기 강세는 10월 중순 이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