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고강도 친환경 정책이 시행되면 매년 370억파운드(약 60조원)에 이르는 세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재무부 경고가 나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050년 탄소 순배출 ‘제로’를 목표로 녹색산업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 세대에 ‘친환경 청구서’가 쌓이는 것을 피하려면 추가 세원 확보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영국 재무부는 19일(현지시간) 공개된 보고서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탄소 제로’ 정책을 시행하면 연료세와 차량소비세 수입이 고갈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이들 항목으로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370억파운드다.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세금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정부가 추가 공적사업 지출을 확대하려면 기존 세금체계를 바꾸거나 새로운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 채권 등을 발행해 빚을 내는 방안에 대해 재무부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미래 세대에게 불공정한 ‘청구서’를 내밀게 되는 데다 지속 가능한 방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강도 높은 친환경 정책이 영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위험도 있다. 기업들이 영국보다 완화된 환경 정책을 시행하는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전문가들은 재정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도로 사용료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재무부가 공개한 문서에는 추가 세수 확보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 정부 고문을 지낸 컨설팅회사 EY의 매트 페르손 파트너는 “누가 탄소 제로 정책의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는 앞으로 10년간 정부를 지배하는 주된 논쟁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존슨 총리와 리시 수낙 재무장관이 탄소 배출 순제로 전환 정책의 경제 효과에 관해 갈등을 빚은 뒤 이런 문서가 공개됐다고 전했다. 친환경 정책의 재원 문제를 두고 영국 정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달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막하는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존슨 총리는 친환경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으로 30년간 전력 생산은 물론 운송, 가정용 난방 등을 할 때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는 게 목표다.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원전 투자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