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오래간다"…주요국 국채금리 급등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주요국 단기 국채 금리가 일제히 급등하고 있다. 글로벌 물가 상승세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는 채권 투자자가 늘면서다. 빚을 내 돈을 풀고 있는 각국 정부에 대한 긴축 전환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플레 우려에 수익률 급등

"인플레 오래간다"…주요국 국채금리 급등
2일(현지시간) 0시 기준 뉴욕채권시장에서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연 0.51%로 올랐다. 2년 만기 국채는 정부의 통화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날부터 3일까지 열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인플레 우려 등이 커지며 국채 수익률이 상승(가격 하락)했다. 국채는 정부가 발행하는 빚이다. 국채 수익률이 오른다는 것은 정부가 빚을 낼 때 감당해야 할 이자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주요국 단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이후 일제히 급등세다. 미국 국채 2년물 수익률은 지난달 29일 장중 한때 연 0.55%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고치다. 한 달 전만 해도 연 0.21% 수준이었다.

9월까지 연 0.2% 안팎을 유지하던 영국의 2년물 국채 수익률도 지난달 19일 연 0.75%까지 올랐다. 캐나다의 2년물 국채 수익률은 1일 오후 2시 기준 연 1.08%로 뛰었다. 한 달 전엔 연 0.52%였다.

안드레아 이아넬리 피델리티인터내셔널 투자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모든 게 일시적이라는 중앙은행의 해석을 시험하고 있다”며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에 맞선 투자자들

각국 중앙은행은 올 들어 세계 경제를 덮친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코로나19 탓에 꽉 막혔던 소비 수요가 갑자기 분출하면서 공급망 병목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각국 정부의 과도한 돈풀기 때문에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시장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해 화폐 가치가 떨어졌고 이 때문에 상품 가치가 급등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해법도 갈린다. 코로나19가 일으킨 ‘일시적’ 병목 탓에 물가가 급등하는 것이라면 이 문제만 해결되면 가격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Fed 등이 “내년께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반면 그동안 시장에 푼 막대한 현금이 쌓여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돈 풀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 미국 공화당 등은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고 긴축으로 전환하라고 말한다. 단기 국채 수익률이 오르는 것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탠다. 나랏빚을 낼 때 더 많은 비용을 치르는 방향으로 시장이 베팅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호주 중앙은행, 채권 수익률 목표 포기

일반적으로 채권시장은 중앙정부의 통화정책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최근엔 투자자들이 시장을 바꾸는 것은 물론 중앙은행 통화정책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호주 중앙은행(RBA)은 2일 통화정책 회의를 열고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연 0.1%로 유지하기로 한 정책을 중단하기로 했다. 시장에 밀려 통화정책을 바꾼 것이다.

당초 RBA는 2023년 말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2024년 4월까지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연 0.1%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중앙은행이 수익률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국채를 계속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9월까지 연 0.2%대를 유지하던 3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말 연 0.85%로 치솟았다. 2년물 국채 수익률도 급등했다. 정부가 국채를 사들이는 것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