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바람을 타고 대형 석유기업들이 잇달아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을 내놓고 있다.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에너지 비용이 치솟자 미국 인도 등은 원유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석유 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지난해 순이익이 128억달러(약 15조3060억원)를 기록했다고 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8년 만의 최고치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125억달러)를 웃돌았다. 2020년 순손실 57억달러를 만회하고도 남는 이익을 낸 것이다. 실적 호조에 BP는 올 1분기에만 15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영국 석유기업 쉘도 8년 만에 최고 실적을 냈다. 쉘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네 배 증가한 193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엑슨모빌과 셰브런도 지난해 각각 230억달러와 156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2014년 이후 최고 실적이다.

대형 석유기업들의 돈잔치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가가 치솟자 기업들에 석유 추가 공급을 요청했다”며 올해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공급량 전망치를 기존 1180만 배럴에서 1197만 배럴로 상향 조정했다. 글로벌 원유 공급량 전망치도 기존 하루 평균 1억105만 배럴에서 1억139만 배럴로 올렸다. 하지만 EIA는 공급이 여전히 수요(1억600만 배럴)에는 못 미칠 것으로 봤다.

세계 3위 원유 수입국인 인도에서는 정유사들이 연간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석유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의 23개 정유회사 가운데 18곳이 생산 설비 가동률을 지난해 8월 87%에서 최근 100%로 끌어올렸다. 블룸버그는 “인도가 급증한 수요에 원유 수입을 늘리면서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석유 기업에 ‘횡재세(windfall tax)’를 물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야당은 국민의 고유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석유 기업들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리시 수낙 영국 재무부 장관은 “횡재세를 징수하면 원유 공급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