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공장 해외이전 10년…의외의 '부작용'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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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실질실효환율 세계 최저 추락
엔화 구매력 50년 전으로 후퇴
日기업 해외서 번 외화 현지 재투자
'오프쇼어링'으로 엔低 차단막 사라져
엔화 구매력 50년 전으로 후퇴
日기업 해외서 번 외화 현지 재투자
'오프쇼어링'으로 엔低 차단막 사라져
일본 기업들이 ‘엔고(高)’를 피해 지난 10년간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한 결과 환율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주요국 통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엔화의 구매력이 50년 전으로 후퇴했다.
20일 국제결제은행(BIS)과 일본은행에 따르면 1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67.55엔으로 1972년 6월(67.49) 이후 50년 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1972년 달러 당 엔화는 308엔, 일반 근로자들의 월급은 10만엔대로 엔화 가치와 평균소득 모두 현재의 3분의 1 이었다.
1월의 실질실효환율은 현재 엔화의 구매력이 1972년 수준임을 나타낸다. 1995년 150을 넘었던 수치가 25년만에 반토막났다.
60개 주요 통화 가운데 위안화가 131.01로 가장 높고 달러(119.75)와 파운드(105.15)도 100을 넘는다. 한국은 2018년 9월 114.74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1월 103.28까지 하락했지만 100 이상은 유지하고 있다. 60개국 가운데 19번째다. 엔화보다 실질실효환율이 낮은 통화는 아르헨티나 페소와 콜롬비아 페소, 브라질 헤알, 터키 리라 등 4개 뿐이다.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추락한 것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물가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하락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최근에는 일본 기업의 생산시설 해외이전(오프쇼어링) 등 적극적인 해외진출이 엔화의 위상 추락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법인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무역수지가 아니라 제1차 소득수지(해외 법인과 해외 자산을 통해 벌어들인 배당과 이자소득)에 반영된다.
무역수지에 반영되던 흑자가 1차 소득수지로 이전되면서 ‘엔저(低)’를 차단할 엔화 매수세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과거 일본의 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팔고 엔화를 샀다. 바클레이즈증권은 “최근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현지에 재투자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현지법인은 2만5693곳(2019년 기준)으로 주요 경제대국 가운데 가장 많다. 2010년 183조2000억엔(약 1901조원)이었던 해외 법인 매출은 2018년 290조9000억엔으로 58.8% 늘었다. 일본 제조업의 해외 생산비율은 18.1%에서 25.1%로 증가했다.
해외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자 일본의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요소도 극적으로 변했다. 일본은 해마다 10조엔 이상을 세계 시장과의 거래로 벌어들이는 경상수지 흑자대국이다. 2017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2조3995억엔에 달했다.
2010년까지는 제1차 소득수지와 무역수지가 고르게 흑자를 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2010년 이후 1차 소득수지는 2009년 12조9868억엔에서 2021년 20조3811억엔으로 늘었다. 2020년에는 일본의 1차 소득수지가 11년 만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교역으로 매년 10조엔 이상을 벌어들이던 ‘무역흑자국’은 옛말이 됐다. 2010년 이후 무역수지는 흑자와 적자를 반복했고 규모는 점점 줄었다. 작년 8월부터는 6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무역수지는 2조1910억엔 적자로 역대 2번째 규모였다.
원유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수입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8조5000억달러에 달했다. 반면 일본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수출이 1% 감소하는 등 수출은 둔화세가 뚜렷했다.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으로 수출 규모가 줄어들자 원자재 가격 상승의 충격이 고스란히 무역수지 적자에 반영되는 구조다.
우에노 다이사쿠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 수석 외환전략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국제 원자재가 급등은 비자원국 통화인 엔화의 매도세 증가로 이어진다”며 “해외 공장을 자국으로 되돌리거나 원자재 자급률을 개선하는 것 외에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2021년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은 7조737억엔으로 전년보다 59.1% 늘어난 반면 해외 기업의 일본기업 M&A는 6조3237억엔으로 8.9% 줄었다.
주요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시장 전문가들이 엔화 실질실효환율의 추가 하락을 점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중앙은행이 연내 금리인상을 예고한 반면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20일 국제결제은행(BIS)과 일본은행에 따르면 1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67.55엔으로 1972년 6월(67.49) 이후 50년 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1972년 달러 당 엔화는 308엔, 일반 근로자들의 월급은 10만엔대로 엔화 가치와 평균소득 모두 현재의 3분의 1 이었다.
1월의 실질실효환율은 현재 엔화의 구매력이 1972년 수준임을 나타낸다. 1995년 150을 넘었던 수치가 25년만에 반토막났다.
◆통화가치 60개국 중 56위
실질실효환율은 BIS가 세계 60개국 통화를 상대국간 환율과 무역 거래량, 물가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서 산출한 통화의 가치다. 2010년을 100으로 보고 이보다 낮으면 해당 통화의 구매력이 떨어졌음을 의미한다.60개 주요 통화 가운데 위안화가 131.01로 가장 높고 달러(119.75)와 파운드(105.15)도 100을 넘는다. 한국은 2018년 9월 114.74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1월 103.28까지 하락했지만 100 이상은 유지하고 있다. 60개국 가운데 19번째다. 엔화보다 실질실효환율이 낮은 통화는 아르헨티나 페소와 콜롬비아 페소, 브라질 헤알, 터키 리라 등 4개 뿐이다.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추락한 것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물가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하락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최근에는 일본 기업의 생산시설 해외이전(오프쇼어링) 등 적극적인 해외진출이 엔화의 위상 추락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법인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무역수지가 아니라 제1차 소득수지(해외 법인과 해외 자산을 통해 벌어들인 배당과 이자소득)에 반영된다.
무역수지에 반영되던 흑자가 1차 소득수지로 이전되면서 ‘엔저(低)’를 차단할 엔화 매수세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과거 일본의 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팔고 엔화를 샀다. 바클레이즈증권은 “최근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현지에 재투자한다”고 분석했다.
◆日기업 현지법인 가장 많아
일본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엔화 가치 상승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생산시설을 대거 해외로 옮겼다.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현지법인은 2만5693곳(2019년 기준)으로 주요 경제대국 가운데 가장 많다. 2010년 183조2000억엔(약 1901조원)이었던 해외 법인 매출은 2018년 290조9000억엔으로 58.8% 늘었다. 일본 제조업의 해외 생산비율은 18.1%에서 25.1%로 증가했다.
해외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자 일본의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요소도 극적으로 변했다. 일본은 해마다 10조엔 이상을 세계 시장과의 거래로 벌어들이는 경상수지 흑자대국이다. 2017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2조3995억엔에 달했다.
2010년까지는 제1차 소득수지와 무역수지가 고르게 흑자를 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2010년 이후 1차 소득수지는 2009년 12조9868억엔에서 2021년 20조3811억엔으로 늘었다. 2020년에는 일본의 1차 소득수지가 11년 만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교역으로 매년 10조엔 이상을 벌어들이던 ‘무역흑자국’은 옛말이 됐다. 2010년 이후 무역수지는 흑자와 적자를 반복했고 규모는 점점 줄었다. 작년 8월부터는 6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무역수지는 2조1910억엔 적자로 역대 2번째 규모였다.
원유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수입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8조5000억달러에 달했다. 반면 일본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수출이 1% 감소하는 등 수출은 둔화세가 뚜렷했다.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으로 수출 규모가 줄어들자 원자재 가격 상승의 충격이 고스란히 무역수지 적자에 반영되는 구조다.
우에노 다이사쿠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 수석 외환전략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국제 원자재가 급등은 비자원국 통화인 엔화의 매도세 증가로 이어진다”며 “해외 공장을 자국으로 되돌리거나 원자재 자급률을 개선하는 것 외에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日銀 '마이웨이'…円 더 떨어진다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으려는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내수시장에서 올리는 이익률은 매출의 3%를 밑도는 반면 해외 현지법인의 이익률은 6%에 달한다.2021년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은 7조737억엔으로 전년보다 59.1% 늘어난 반면 해외 기업의 일본기업 M&A는 6조3237억엔으로 8.9% 줄었다.
주요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시장 전문가들이 엔화 실질실효환율의 추가 하락을 점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중앙은행이 연내 금리인상을 예고한 반면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