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 회복세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둔화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는 가운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성장률 하락폭이 미국보다 두 배가량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와 난민 유입 문제,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삼중고’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 높아 충격 더 커”

'우크라 쇼크' 유럽이 美보다 두 배 더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인용해 “올해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이 1.4%포인트 감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현재까지 유럽 경제에 미친 영향을 기준으로 분석한 자료다. 미국의 GDP 하락폭(-0.88%포인트)보다 약 두 배 크다. 로렌스 분 OECD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미국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3개월 만에 급반전했다. 지난달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돌발변수’가 생기면서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짙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물가 전반으로 확대되면 유럽인의 실질임금이 줄고 소비 여력이 감소하면서 경기 침체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독일에선 2020년부터 2년 연속 실질임금이 감소했다. 비토 콘스탄시오 유럽중앙은행(ECB) 전 부총재는 “시장의 ‘야성’이 크게 줄고 저축은 증가(지출은 감소)하면서 올해 유럽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에 우크라이나 난민이 대거 몰려들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유럽은 숙소 마련에서부터 의료비까지 이들의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 지난 16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첫해에만 300억달러(약 36조4650억원)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FT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난민 300만여 명을 지원하는 데 가장 큰 부담을 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것도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혔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봉쇄 조치로 공급망 병목현상이 악화하면 유럽에도 연쇄 효과가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유럽 곳곳에서 생산 중단·물류난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장은 이미 유럽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품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독일 자동차업계는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스페인에선 연료비 상승에 분노한 트럭 기사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물류난이 악화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럽이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산 에너지가 끊기는 경우다.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이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내놓자 독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1’ 천연가스관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얀 하지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천연가스관이 차단될 경우 유로존의 생산 활동이 2.2% 위축되고 경기 침체가 촉발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레자 모가담 모건스탠리 수석경제고문은 “미국에선 경기가 과열돼 더 이상 부양책을 쉽게 쓸 수 없지만 유럽에선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OECD 측은 “재정 지원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타격을 절반으로 줄일 것”이라며 “높은 물가에 더 큰 피해를 보는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