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기준금리 인상과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까지는 시장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러나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1회 이상 할 수 있다는 발언은 시장을 놀라게 했다. 시장은 다음달 3~4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빅스텝과 대차대조표 축소 결정이 나올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연속 빅스텝 밟을 수도

6일(현지시간) 공개된 Fed의 지난달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빅스텝이었다. 지난달 15~16일 FOMC 회의가 열리기 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Fed가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설이 무성했다. 하지만 결국 0.25%포인트 인상에 그치자 시장은 안도했다.

美, 내달 금리 0.5%P 인상 기정사실화…"3연속 빅스텝 가능성도"
그러나 당시 회의 참석자들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빅스텝을 유력하게 검토했다는 사실이 의사록에서 밝혀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만 아니었다면 지난달 미 기준금리가 ‘제로금리’에서 벗어나 연 0.5~0.75%로 상승했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현재 미 기준금리는 연 0.25~0.5%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다음달 빅스텝 가능성은 78.8%다. 그렇다면 제로금리 시대에 종언을 고한 지 두 달 만에 연 1%대 기준금리에 다가서게 된다. Fed의 빅스텝은 2000년 이후 22년 동안 없었다.

또한 참석자 대부분이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경우 ‘한 번 이상’의 빅스텝이 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모아 연속 빅스텝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참석자들이 중립금리 수준인 연 2.4%까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3연속 빅스텝 가능성도 점쳤다.

월가에서는 Fed에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라 헌트 알파인우즈캐피털 매니저는 “1~2월 증시 하락을 감안해 Fed가 금리 인상 등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시장 기대가 깨졌다”고 평했다. 이날 나스닥지수가 전날보다 2.22% 떨어지는 등 뉴욕증시는 하락 마감했다. 이어 7일 한국 코스피지수는 1.43%,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69% 하락 마감하는 등 아시아 증시도 약세였다.

대규모 채권 매각 나설 듯

Fed가 최우선 과제인 인플레이션 잡기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해석이 많다. 지난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9% 급등하며 40년 만에 최대 상승폭 기록을 세웠다.

Fed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줄이는 대차대조표 축소도 이르면 다음달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지난달 FOMC 회의 참석자들은 대차대조표 축소의 월 상한선을 950억달러(약 116조원)로 하자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미 국채 600억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 350억달러 등이다. 1년이면 최대 1조1400억달러(약 1392조원) 이상의 자산을 덜어내겠다는 의미다. 보유한 국채와 MBS의 만기가 도래하면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을 쓰게 된다.

이 상한선은 가장 최근의 긴축 사례인 2017~2019년 한도(최대 500억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유동성을 거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Fed는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와 MBS를 매달 1200억달러어치씩 매입했다가 지난해 가을부터 매입액을 줄여 왔다. 그동안 일각에서는 Fed가 장기간 과다하게 자산 매입에 나서 시중 유동성을 과도하게 부풀렸다는 비판 여론도 일었다.

Fed의 급격한 노선 선회가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제이 하트필드 인프라캐피털어드바이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Fed의 대규모 긴축 결정은 다소 경솔하다고 생각한다”며 “미 경제의 불황 위험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미 노동부는 이달 2일까지 1주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16만6000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53년 만의 최저치다. 고용시장의 탄탄한 회복세 속에 Fed의 긴축 행보에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