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업체들이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이면서 곤혹을 겪고 있다. 경영진이 사퇴하거나 벌금을 물린 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 투자를 구체화하기 위한 규정 마련에 들어갔다.

지난 1일 독일 자산운용사인 DWS그룹의 아소카 뵈르만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10일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DWS그룹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홍보 시 실제보다 ESG 투자 정도를 부풀렸다는 ‘그린워싱’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결단이다. 그린워싱은 실제와 달리 친환경 투자·경영을 한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행위를 뜻한다.

투자정보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뵈르만 CEO는 “DWS그룹에서 내놓는 모든 신규 투자 상품이 ESG펀드가 될 것”이라며 ESG 투자 행보를 예고했다. 하지만 한 달 뒤 데지레 픽슬러 DWS 전 지속가능경영 책임자가 “DWS그룹이 2020년 연례보고서에서 ESG 역량을 실제와 다르게 드러냈다”고 내부고발을 하자 SEC와 독일연방금융감독청(BaFiN)이 지난해 8월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31일엔 독일 검찰이 DWS그룹 사무실과 DWS그룹의 대주주인 독일 도이체방크의 프랑크푸르트 본사를 압수수색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검찰 측은 DWS그룹이 내놓은 펀드가 실제 판매계획서에 기재된 내용과는 달리 투자 상당수에서 ESG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BNY멜론 투자자문’도 그린워싱으로 홍역을 치뤘다. 지난달 23일 SEC는 BNY멜론 투자자문에 벌금 150만달러(약 18억원)를 부과했다. “BNY멜론 투자자문이 운용 중인 뮤추얼펀드가 ESG 투자 지표를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투자자문사는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고객들에게 “펀드 내 모든 투자가 ESG 품질 검토를 거쳤다”고 안내했지만 SEC는 일부 투자에 품질 검토가 누락되거나 왜곡된 것으로 파악했다.


다른 업체들의 ESG 투자를 놓고서도 잡음이 나오고 있다. 미국 환경단체인 레인포레스트 액션 네트워크(RAN)에 따르면 JP모간체이스가 화석연료 업계에 지원한 대출 규모는 지난해 617억달러로 전년 동기(518억달러) 대비 99억달러가 늘었다. JP모간체이스는 '탄소배출 제로'를 선언하며 ESG 경영을 예고한 업체 중 하나다. 이에 기후운동가들이 지난 17일 주주총회를 앞둔 JP모간체이스의 본사 앞에서 화석연료 업체 투자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투자운용사 뱅가드도 최근 ESG 이름을 붙인 펀드가 메타 등의 기술주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그린워싱 논란이 거듭되면서 규제기관도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SEC는 지난달 25일 공시 규정 개정안을 상정했다. ESG로 홍보하는 투자 상품이 실제 ESG 친화적인지를 표준화된 지표로 증명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안건은 60일간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시행 여부가 결정된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성장’, ‘가치’ 등의 이름이 붙은 펀드는 투자 비중의 80% 이상을 이 이름과 관련된 상품에 투자해야 하며 ‘녹색’, ‘저탄소’ 등의 이름이 붙은 펀드는 환경친화적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ESG 투자 평가에 대한 기준 마련을 강조하고 있다. 마고 데이 어카운터빌리티카운슬 정책 이사는 “ESG 투자를 한다고 가짜 이름을 붙이는 데에 그간 ‘불(不)처벌’이 만연했다”며 “ESG 상품을 내놓는 투자자들은 투자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드 로젠블루스 베타파이 리서치 책임자는 “ESG 투자가 가치 증진이 아니라 단지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데에만 그친다면 그린워싱에 대한 관심이 ESG투자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자산 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체계와 스토리텔링을 마련하고 ESG투자에 자신들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