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5만%에 달했던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200%대로 내려앉았다.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는 최악의 물가 상승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각종 규제 완화 덕에 베네수엘라의 살인적 인플레이션이 개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집권 이후 오랫동안 지속돼온 가격통제 정책과 여러 규제를 완화해 인플레이션 문제를 풀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구체적으로 베네수엘라는 미국 달러를 적극 받아들이고 정부 적자를 감축하는 한편 민간 부문의 유연화를 꾀했다.

2019년 연 물가상승률이 35만%에 달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신뢰할 만한 화폐인 미국 달러 유통을 늘렸다. 각종 규제까지 풀자 민간 경제 활동이 살아났다. 지난해 카지노 금지 규정도 전격 철폐했다.

베네수엘라중앙은행이 2021년 화폐 액면을 절하하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한 것도 물가가 잡힌 이유다. 당시 기존 화폐 단위에서 ‘0’ 여섯 개를 빼는 액면 절하가 이뤄졌다.

블룸버그는 최근 들어 베네수엘라의 모든 경제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00%대로 내려온 뒤 올 1월 472%로 떨어졌다. 지난 4월에는 222%까지 내려갔다. 집계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베네수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최대 2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경제위기 탓에 중남미 전역으로 빠져나간 600만 명의 베네수엘라 난민 중 일부가 베네수엘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후보로 베네수엘라 원유가 꼽히면서 외국인 투자자들도 들어오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변신이 불완전하다는 지적도 많다.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물가상승률이 200%로 높은 데다 국민 90%의 한 달 소득이 30달러에 그칠 정도로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베네수엘라는 투자 부족으로 석유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직 사회주의적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어 기업 친화적 정책은 언제든 쉽게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