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6일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지속 가능한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방안을 가결했다. 오는 11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최종 승인하면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가 들어간 택소노미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가 친환경 산업으로 규정돼 유럽 각국이 활발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EU, 원전·가스 친환경으로 규정

유럽의회는 이날 친환경 투자 기준인 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방안을 투표한 결과 328명 찬성으로 가결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278명은 반대표를 던졌고, 33명은 기권했다.

택소노미는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경제 활동을 분류한 목록이다. 친환경 기술과 산업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되도록 하는 물길 역할을 한다. 유럽에서는 원전을 친환경 산업으로 인정할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력의 약 70%를 원전에서 얻는 프랑스와 핀란드 등은 탄소 배출이 없고 안정적인 전력 생산이 가능한 원전을 지지한다. 독일과 덴마크 등은 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EU는 2020년 6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산업 분야를 분류·정리하는 체계인 택소노미를 처음 발표했다. 첫 발표 당시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는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아 이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천연가스 발전 시 메탄이 배출되는데 메탄의 온실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최대 80배에 이른다. 원자력발전에도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있어 택소노미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환경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연료인 석탄 사용을 줄이기 위해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한국도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추진

논란에도 불구하고 EU는 지난해 12월 택소노미 초안에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한 데 이어 올 2월 이 초안을 확정했다. 완전하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당시만 해도 일부 국가의 반발을 제외하곤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유럽 에너지 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택소노미에 천연가스가 포함되면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이 이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15일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위원회는 합동 회의를 열어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을 찬성 76표, 반대 62표, 기권 4표로 채택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출신 폴 탕 EU 의원은 “택소노미는 미래를 위한 지침으로 지속 가능해야 한다”며 “택소노미에 가스를 포함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만 높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환경전문 변호사인 스비트라나 로만코도 “천연가스의 택소노미 포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최고 선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덴마크 출신 페르닐 바이스 의원은 “원자력과 천연가스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EU는 석탄과 석유에 묶이게 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탈(脫)원전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가 작년 말 원전을 빼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를 넣은 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8월까지 원자력발전이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되도록 K택소노미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4월부터 원전업계 및 전문가들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수정안을 준비 중이다.

■ 그린택소노미 (Green Taxonomy)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 산업인지 분류하는 체계. 친환경 기술과 산업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되도록 하는 물길 역할을 한다.

전설리/이지훈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