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천연가스 수송관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1’이 11일(현지시간)부터 열흘 동안 정기 점검에 들어가면서 가스 공급이 일시 중단된다. 러시아 정부는 정비 후 재공급을 공언했지만 유럽연합(EU)은 가스 공급이 끊길 것을 염려해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독일을 거쳐 유럽 전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1’ 파이프라인을 정기 점검한다고 1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달 11~21일 공급이 일시 중단된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궁)에선 “정기 점검이 마무리되면 정상적으로 가스 공급이 재개될 것”이라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건 모두 서방의 잘못된 제재 때문”이라고 밝혔다.

캐나다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은 노르트스트림-1의 주요 부품인 터빈을 독일 지멘스에너지에 수리를 맡겼다. 지멘스에너지는 캐나다 업체에 정비를 의뢰했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의 대러 제재로 인해 수리가 완료된 터빈을 다시 반환받지 못했다.

가스프롬은 지난달 터빈이 부족해 가스관 작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르트스트림-1의 가스 공급량을 기존의 40% 수준으로 줄였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자 캐나다는 지난 9일 터빈을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점검 소식에 유럽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는 이날 독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가스공급을 영구히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 마련에 착수한 유럽 국가들은 소비량이 최고조에 달하는 겨울을 넘기기 위해 여름부터 가스 비축량을 늘릴 방침이다. EU회원국들은 지난 5월부터 각국의 천연가스 비축량을 11월까지 총 저장 용량의 80%로 늘리는 데에 합의했다. 독일은 90%를 목표로 잡았다. 독일연방네트워크청(FNA)이 지난 8일 발표한 독일의 천연가스 재고량은 63% 수준이다.

유럽 에너지컨설팅업체 우드 메킨지의 애널리스트 그라함 프리드먼은 “유럽 국가 중에서 겨울 기온이 낮은 독일이 천연가스 공급 중단에 가장 취약하다”며 “겨울의 가스 일일 소비량이 여름 대비 3배 이상 증가하는 게 유럽 평균이지만, 독일만 6배 이상 급증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천연가스 소비량 중 3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공급이 전면 중단되면 배급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병원과 응급 의료시설이 최우선 배급시설이다. 난방 대란을 우려해 가계를 기업보다 우선한다. 지난 8일 독일 의회에선 탄소배출을 감수하고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을 허용하는 ‘비상 법안’도 통과시켰다.

불안한 독일 주민들은 가스 대용 난방 도구에 손을 뻗었다. 전기·석유 히터를 비롯해 적외선 패널, 컨벡터, 캠핑용 스토브 등의 수요가 폭증했다. 목재 연소식 오븐과 열펌프를 설치하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부품과 전문인력 부족으로 인해 수급난이 지속될 전망이다.

유럽 기업들도 대책마련에 여념이다. 천연가스가 생산공정에 주요한 재료라서다. 유럽 최대 비료업체인 야라 인터내셔널은 천연가스에서 비료의 주원료인 암모니아 질소를 추출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가스 수입경로를 바꿨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스베인 홀세테르 야라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는 “가스 공급 축소에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유럽 최대 구리생산업체인 아우루비스도 생산공정에 가스 대신 전기와 석유로 대체할 계획이다. 하지만 완전히 가스를 대체하려면 1년은 걸릴 거라고 전망이다. 독일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은 탄소 배출 절감 정책을 변경했다. 폭스바겐은 2018년 천연가스 설비에 4억유로(약 5238억원)를 투자했다. 올해 말까지 전면적으로 석탄 발전을 천연가스로 대체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하버트 디에스 폭스바겐 CEO는 석탄 사용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