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7일(현지시간)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고령층 의약품 부담 경감 등을 종합적으로 담은 법안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내세웠던 역점 법안인 ‘더 나은 재건(BBB)’의 수정·축소 버전이다. 오는 12일 전후로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 문턱을 통과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될 전망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친환경 에너지 안보 확보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투입하는 3690억달러(약 481조원) 규모의 지원책이다. 친환경 에너지 발전 전환에 동참하는 미 소비자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저소득층 소비자에게 총 90억달러 규모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휘발유 등 에너지 비용 증가로 늘어난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탄소배출량 감축도 유도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또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급한다. 저소득·중위소득 계층이 구입하는 중고 전기차에 대해서도 대당 4000달러까지 지원된다.

법안의 두 번째 항목인 ‘미국 에너지 안보 및 제조업’ 요건에서는 전기차 생산과 관련된 북미 공급망 강화 내용이 담겨 있다. 전기차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북미 지역에서 조립·생산된 전기차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전기차 배터리에 포함된 특정 광물이 해외 우려 국가에서 추출 및 제조되거나 재활용될 경우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기차 제조업계에 사실상 중국산 배터리 원자재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압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층의 의약품 부담을 줄이기 위해 64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도 이번 법안의 패키지로 묶여 있다. 또 이 같은 정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세수 마련 방안으로 대기업에 부과하는 실질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이 함께 마련됐다. 연간 10억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타깃이 될 전망이다.

한편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겨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인플레이션은 시중 유동성이 너무 많을 때 발생하는데, 이번 법안의 각종 보조금 지급과 세제 혜택 등이 과하다고 했다. 헤리티지는 “바이든 정부와 미 의회가 지출을 중단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