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러시아가 오는 31일부터 사흘간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후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했지만 언제든 다시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1년 새 10배 넘게 급등했다. 유럽 경제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천장 뚫은 유럽 천연가스 가격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ICE거래소에서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9월물)’ 가격은 MWh당 280.235유로를 기록했다. 전 거래일 대비 15% 올랐다. 지난해 8월 24일 가격(27.635유로)의 10배를 넘긴 것이다. 이날 장중엔 21% 오른 295유로까지 치솟기도 했다.

난방으로 에너지 수요가 많을 때 인도되는 12월 인도분 가격은 300.75유로까지 올랐다.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은 유럽 천연가스 가격을 평가하는 척도로 간주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2월 중순만 해도 천연가스 가격은 80유로를 밑돌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면서 3월 초 이 가격은 장중 300유로까지 치솟았다. 이후 전황이 정체되면서 90유로 밑으로 내려갔던 천연가스 가격은 6월부터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산 가스의 유럽 공급을 담당하는 가스프롬이 지난 6월 독일과 이어진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의 하루 가스 공급량을 공급능력(1억6700만㎥)의 40%(6700만㎥) 수준으로 줄인 여파였다. 지난달 27일엔 20%(3300만㎥) 수준으로 공급량을 더 줄였다.

러시아는 가스 공급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가스프롬은 지난 19일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사흘간 정비를 위해 노르트스트림1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비 후 기술적 문제가 없으면 공급능력의 20% 수준으로 가스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 같은 통보에 유럽 시장에선 “앞으로도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왔다. 가스프롬이 ‘기술적 문제가 없는 경우’로 공급 재개 여건을 명시해서다. 이날 네덜란드 금융업체인 ING그룹은 “진짜 우려해야 하는 부분은 가스 공급 중단보다 공급 재개가 이뤄질 것인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유로화는 바닥없는 추락

문제는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전면 차단하는 경우 마땅한 대책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캐나다를 방문해 쥐스탱 트리도 캐나다 총리와 캐나다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대해 논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캐나다 동부에 수출용 LNG터미널을 건설하는 게 가장 그럴듯한 방안이지만 빨라도 2년은 지나야 실제 공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정유업체와 입찰 경쟁이 붙으면서 카타르에서 선박으로 들여오는 LNG 공급량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천연가스 가격도 뛰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천연가스 선물(9월물 가격)은 백만Btu(열량 단위)당 9.680달러를 기록했다. 전 거래일 대비 3.7% 오르면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1월 3일) 가격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유로화는 한 달 만에 또 달러와 등가(패리티·1유로=1달러)를 밑돌았다. 이날 유로당 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0.9928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13일 기록했던 연중 최저치(0.9952달러)를 밑돌았다. 2002년 이후 가장 낮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다음달에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책을 펼칠 것이란 시장의 예상과 폭염, 가뭄으로 인한 저성장 우려가 유로화 하락을 부추겼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분기에 유로당 달러 환율이 0.97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