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에 대해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이란 정부는 부정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드론의 생산지가 이란이라고 판단해서다. 유럽연합(EU)도 히잡 의문사 사건으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해 대규모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이란에 대대적인 제재를 했다. 이란과 서방 국가들의 핵협상 타결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 드론으로 키이우 공격”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란제로 보이는 드론이 키이우를 공격했다는 보도를 모두 봤는데도 이란은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7월부터 경고한 대로 이란은 러시아에 무인기 판매를 계획 중이었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뿐 아니라 민간을 상대로 드론을 사용한 광범위한 증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올 7월 “이란이 러시아에 수백 대의 공격용 드론을 팔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드론 사용 훈련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러시아는 키이우 등을 자폭 드론으로 공격해 8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이란 외무부는 “이란이 러시아에 드론을 보냈다는 서방 뉴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전쟁 당사국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란 근위대 텔레그램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드론은 이란산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글이 올라왔다. 알리 아크바 라에피포 이란 사이버군 사령관도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샤히드 드론은 가장 우수한 무기”라고 추켜세웠다.

미국은 이란이 러시아에 추가로 무기를 공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장-피에르 대변인은 “언론 보도를 보면 이란은 자신들이 반대한다고 밝힌 침공을 지지하기 위해 더 많은 파괴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며 “우리는 러시아와 이란 간 무기 거래에 대한 제재를 계속 강력하게 시행할 것이며 이란의 대러시아 무기 판매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달 이란제 드론의 러시아 운송을 도운 이란회사를 제재했으며 드론 거래와 관련한 추가 제재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 러시아의 야합”

EU는 이날 룩셈부르크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어 반정부 시위를 폭력 진압하는 데 앞장선 이란 정부 관료 11명과 4개 기관의 자산 동결을 명령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한 이란과의 단교도 추진할 방침이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18일 “이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이란과의 단교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이란의 마흐사 아미니(22)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아 복장 규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중 갑자기 쓰러져 사흘 뒤 의문사하자 이란에서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2000년 이후 이란에서 세 차례 대규모 시위가 있었지만 모두 이란의 강경 대응으로 진압됐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과거보다 광범위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 결과가 다를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물가 급등으로 인한 경제난과 지지부진한 개혁에 대한 분노가 날로 커지고 있어서다. 이란의 8월 물가상승률은 52.2%에 달한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이란이 러시아와 손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러시아와 이란이라는 양대 독재 정권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협력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