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세계 경제 향방을 결정했던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유임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책임론에 휩싸였지만, 최근 물가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하자 실각 목소리가 잦아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지난해 말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독대를 통해 유임 의사를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승인했다. 바이든 정부의 남은 2년도 옐런 장관이 책임지게 된 것이다. 옐런 장관은 2021년 1월부터 재무장관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남은 상황에서 옐런 장관의 거취를 두고 뒷소문이 무성했다. 지난해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옐런 장관 책임론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옐런 장관은 제롬 파월 Fed 의장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거라는 입장이었다. 물가가 고공 행진하자 옐런 장관은 지난해 6월 자신의 발언이 틀렸다고 시인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하고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며 옐런 장관의 책임론이 약화했다. 당초 옐런 장관은 정쟁에 지쳐 유임을 포기하려 했으나, 바이든 대통령의 설득으로 인해 4년 임기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입법의 성과 등이 옐런 장관의 심경 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 입장에선 정치적 지지대를 얻었다는 평가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1997년), 미 중앙은행(Fed) 의장(2014년)을 역임한 첫 여성 재무장관인 옐런을 활용해 공화당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전망 실패로 입지가 축소됐지만, 옐런 장관은 양당에서 선호하는 경제학자로 평가받는다. 2021년 상원에서 옐런 장관 인준안 표결할 때 찬성 84표를 얻었고 임명 청문회에선 만장일치로 인준안이 통과됐다.

옐런 장관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정부의 부채한도 상향안이 꼽힌다. 연방 정부는 매년 일정 한도 내에서 의회로부터 부채한도를 상향해 채무 부담을 완화해왔다. 적시에 상향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

공화당은 부채한도 상향안에 관해 엄격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방만한 재정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공화당 내 강경파 모임인 ‘코커스 프리덤’이 하원의장 선출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급격한 채무 삭감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부채한도 상향안 표결에 앞서 친(親) 민주당 경제학자가 공화당을 비판했다. 제임스 갤브레이스 텍사스대 교수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PS)에 ‘부채한도 상향안은 호도 책에 불과하다’는 기고문을 내며 예산을 삭감하려는 공화당 강경파의 태도를 지적했다. 경제 불평등을 주로 연구해 온 갤브레이스 교수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민주당 고문을 맡기도 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부채 상향안을 둘러싼 논쟁이 일종의 '정치쇼'라고 비판했다. 상향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아도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사회보장 예산은 역사적으로 지급이 유예된 적이 없고, 시장은 연방정부의 단기 지급 능력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고, 비상시 재무부가 백금화(플래티넘 코인)를 발행해 부채를 갚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1917년 세계 1차대전 이후 공공 부채가 증가하며 부채 상향안이 제정된 뒤 이를 둘러싼 정쟁은 반복됐다”며 “이같은 정쟁은 한낱 촌극에 불과하지만, 가짜 공포에 휘둘리게 되면 부채 한도 상향을 지렛대 삼아 필수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