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수합병(M&A)에 활발하게 나섰던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영업권 상각(writedown of goodwill)’이란 부메랑을 맞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로 높은 가격에 사들인 피인수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업권이란 평가된 기업 가치에 더해지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 무형자산을 뜻한다.
M&A 괜히 했나…'속쓰린 청구서' 날아온다

떨어지는 피인수기업 가치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연간 실적보고 시즌을 앞두고 기업들의 가치가 영업권 상각으로 대폭 삭감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M&A로 사업 확장에 나섰던 글로벌 기업들이 고통스러운 청구서를 받아들 것”이라고 전했다.

통상 기업은 영업권 등 무형자산 가치를 연간 1회 이상 재평가한 뒤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영업권 평가는 향후 현금흐름에 대한 예측과 주가 전망 등을 반영해 결정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긴축으로 지난해 글로벌 주식시장이 약세를 띤 데다 올해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영업권 상각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세계 M&A 거래는 2021년 총 5조70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작년엔 3조6000억달러로 급격히 줄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2조2000억달러였던 총거래액은 하반기 1조400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영업권 상각을 감안해 기업들이 M&A를 줄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리스크 컨설팅업체 크롤은 S&P500 기업 가운데 영업권 평가액이 가장 많이 깎인 상위 10개 기업의 영업권 손상 총액은 2021년 61억달러에서 지난해 354억달러로 6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최근 밝혔다.

미국 1위 케이블 사업자 컴캐스트가 2018년 400억달러를 주고 인수한 영국 위성방송사 스카이에 대해 작년 10월 80억달러 이상의 영업권 손상 규모를 보고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피인수기업의 영업권 상각 때문에 인수기업의 이익이 다 날아가는 사례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M&A 메리트 떨어져

지난주 디즈니를 상대로 위임장 대결을 선포한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가 문제로 삼은 것도 영업권 상각이다. 그는 “21세기 폭스사의 인수(2017년)는 깔끔했던 디즈니의 대차대조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며 “21세기 폭스사의 500억달러 영업권 대부분이 올해 손실로 돌아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KPMG의 파트너 댄 랭글루아는 “계획대로 진행 중인 많은 기업의 M&A도 향후 영업권 상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원자재와 임금 등 비용 압박은 물론 긴축 기조에 따른 고금리, 경제 불확실성 등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또 다른 컨설팅기업 스타우트의 매니징디렉터 재스밋 싱 마르와는 “오늘날 세계는 매우 치명적인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복합위기)’를 맞고 있다”며 “많은 기업이 인수에 성공해도 그 결과물은 기대한 바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이코노미스트 대상 설문조사 결과 향후 12개월 내 경기침체가 있을 가능성(평균치)이 61%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조사 당시의 63%보다 소폭 내려가는 데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날 세계 경제의 분열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7%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이뤄지면 일부 국가의 손실 규모가 8~12%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