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죽지 않았다. 변하고 있을 뿐이다.’

미·중 갈등과 신냉전 기류로 인해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화가 퇴조한다기보다는 재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보 위험이 높아졌지만 효율적인 생산과 판매를 위한 기업들의 니즈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재편에 따라 ‘세계의 공장’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각국은 멕시코와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으로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기업까지 탈중국 흐름에 합류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거래는 줄었지만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과 교류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멕시코 부상

세계화는 죽지 않았다…'脫중국' 빨라질 뿐
미국의 통계청인 센서스뷰로에 따르면 미국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2%에서 지난해 17%로 줄었다. 2007년 이전 10억달러 미만이던 베트남으로부터의 수입 규모가 지난해 1200억달러로 대폭 늘었다. 멕시코의 대미 수출액은 2008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4000억달러에 달했다.

베트남을 기반으로 한 자산관리·개발회사 ECV 홀딩스의 데이비드 루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베트남은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망을 제외하고 기업들이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았던 배경 요소의 대부분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생산인구만 약 1억 명에 달하는 데다 베트남 정부도 경제 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설명이다.

중국 기업들도 중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중국 가전업체 하이센스는 멕시코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15년 일본 샤프로부터 멕시코 로사리토에 있는 TV 제조 공장을 인수했고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에 가전산업단지를 개발 중이다. WSJ에 따르면 하이센스는 멕시코 가전 공장에 2억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미국의 제재를 피하고 관세 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70%를 유니클로에 납품하는 일본 의류제조기업 마쓰오카는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생산 비중을 현재 50%에서 2026년 71%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이를 위해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에 87억엔을 들여 생산시설을 확충하기로 했다. 마쓰오카 관계자는 “중국의 기술력이 높지만 인건비가 올라 인력 확보가 어려워졌다”며 “베트남과 방글라데시에서 근로자를 모집하는 게 수월하다”고 말했다.

중국-러시아 무역 활발해져

미국의 제재 강화 속에서 중국도 대안을 찾아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유럽연합(EU) 국가 간 갈등이 커져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로이터는 최근 중국 관세청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중국의 대러시아 무역 규모가 1조2800억위안(약 235조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제재 때문에 유럽 외 지역으로 에너지 수출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중국은 철로를 통한 러시아산 액화석유가스(LPG) 수입량을 두 배가량 늘렸다.

러시아와 EU 간 에너지 갈등으로 기회를 얻은 국가는 미국이다. EU 집행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EU가 러시아 가스관을 통해 수입한 가스는 전년 동기 대비 74% 줄었다. EU는 대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1~11월 EU가 수입한 미국산 LNG는 520억㎥로 전년 동기 대비 136% 증가했다.

WSJ는 “이 같은 세계화 재편은 이제 초기 단계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