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 교수
니얼 퍼거슨 교수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탈세계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화가 끝났다는 것은 언론에 과장되게 쓰인 신기루라는 얘기다.

경제사학계의 거두로 꼽히는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는 17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탈세계화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에 회의적”이라며 “세계화는 없앨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날 ‘탈세계화 혹은 재세계화(De-Globalization or Re-Globalization?)’ 세션에 참석했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난 여파로 미국이 산업 보조금 지급을 늘리는 등 보호 무역 기조를 보이고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세계화의 끝으로 단정짓기보다는 그 양상이 바뀐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퍼거슨 교수는 자본과 이민 흐름의 증가세는 2007년 정점을 찍었지만 무역과 서비스 부문에서는 아직 정점이 오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퍼거슨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본격화된 2018년부터 세계가 ‘2차 냉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첫 세계화는 영국 제국주의가, 그 이후엔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건 미국이 주도했다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각각 이끄는 두 개의 질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제조업 등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이들 패권 국가의 대립으로 두 개의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퍼거슨 교수는 반도체 공급 문제를 언급하면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의 공장은 잔해 더미로 바뀔 것”이라며 “대만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 부문의 세계화는 거침없이 진전될 것이란 의견을 냈다. 퍼거슨 교수는 “11세인 내 아들도 등굣길에 BTS(방탄소년단) 노래를 내게 들려준다”며 ‘K팝’을 소프트웨어 세계화의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중국 SNS 플랫폼인 틱톡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점도 소프트웨어 세계화의 사례로 꼽았다. 그는 “미국이 실제 틱톡을 금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날 같은 세션에 참가한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유럽연구소 소장은 세계화가 지역별 거점을 이루는 형태로 진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집트와 파키스탄은 중동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었다”며 “지역 단위의 통합 논리가 더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도 “세계화는 바뀔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세계화가 계속될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투즈 소장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본질적으로 세계가 상호 의존성을 갖는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일과 같다”며 “기후 문제를 고려하면 세계화의 완전한 해체는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이어 우즈 옥스퍼드대 블라바트니크 행정대학원 학장은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은 선거 때마다 바뀌지 않는 항구적인 기후변화 목표를 제시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도 지난해 말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고 모습을 달리할 뿐”이라며 글로벌 교역 형태가 바뀌는 것일 뿐 ‘세계화의 종말’이나 ‘탈세계화(deglobalization)’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세계의 공장’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각국이 멕시코와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으로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