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맞아?"…코카콜라 광고 속 일본이 놀라운 이유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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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모델' 못 벗어나는 일본(上)
1988년 직장풍경·일상생활과 큰 차이없는 日
미국은 IX·유럽은 CX로 나아가는데
35년째 변화없는 일본 기업모델
日경제 경쟁력 '장인정신'에 발목 잡히기도
1988년 직장풍경·일상생활과 큰 차이없는 日
미국은 IX·유럽은 CX로 나아가는데
35년째 변화없는 일본 기업모델
日경제 경쟁력 '장인정신'에 발목 잡히기도
1988년을 전후로 한국과 일본에서 방영된 코카콜라 광고는 두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 먼저 제작된 광고와 광고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서도 같은 콘셉트의 광고가 만들어졌다.
1988년은 일본 버블(거품)경제가 절정해 달했을 때다. 일본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인 반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20년 정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던 시기다. 미국을 따라잡을 듯한 기세의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광고였던 만큼 한국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
코카콜라 광고는 초기에는 직장생활과 여가시간의 활력과 여유를 그리다가 점점 생활속에 스며든 자사 상품을 묘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덕분에 당시 두 나라의 직장 생활과 일상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35년 전 직장과 일상의 풍경을 오늘날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 코카콜라 광고에 나타난 1988년의 일상 풍경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마치 기록영화를 보는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반면 일본 광고에 담긴 1988년의 일상과 오늘날은 콜라를 마시는 사람이 줄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변화가 없다. 어린이집 원생들과 중고교생들의 교복, 여름철이면 일상적으로 입는 유카다, 하얀색 자전거로 순찰하는 순경, 다양한 방과후 부활동, 노천온천, 여름 축제(마쓰리),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시치고산 등.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은 한국이 어느 틈엔가 흘려보내 버린 전통 풍습과 옛 모습들이 도쿄 도심에서조차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놀라곤 한다. 서울과 도쿄 생활의 가장 큰 차이를 "계절의 변화와 1년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점"이라고 답하는 한국인 주재원이 많은 이유다.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대신 옛 모습도 소중하게 간직한 일본의 일상 풍경이 매력적이라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업의 측면에서 보는 평가는 사뭇 다르다. 일본의 기업들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대체로 1988년 광고에 나오는 모습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데스크톱 컴퓨터가 노트북으로 바뀌고 사무실 인테리어가 세련된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생활의 풍경이 한결 같다는 점은 안정감을 준다. 반면 전세계 기업들이 혁신에 목을 매는 이 때 변화에 둔감한 기업들이 모인 일본 경제는 정체를 벗어나지 못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일본 재계 스스로 주요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은 IX, 유럽은 CX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일본은 여전히 쇼와모델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평가한다. IX는 ‘이노베이션 트랜스포메이션(Innovation Transformation)’의 약자다. 기술혁신으로 경제구조를 진화시키는 미국 기업들의 미래 전략이다.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빅테크들이 대표적이다. CX는 ‘코퍼레이트 트랜스포메이션(Corporate Transformation)’의 줄임말이다. GAFA와 같은 초대형 혁신 기업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M&A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유럽 기업의 4차산업 대응 전략을 말한다. 이노베이션 대신 기업의 모습과 체계를 변신시켜 미래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쇼와(昭和)시대는 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의 재위기간이다.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른 ‘좋았던 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낡고 구식’의 이미지로 더 많이 쓰인다. 코카콜라 광고에서 묘사한 일본이 쇼와 말기였다는 점에서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쇼와모델을 고수한다'라는 일본 재계의 자평은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다. 쇼와모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미국 기업이 기술혁신, 유럽 기업이 M&A를 통해 미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비해 일본기업은 여전히 ‘쌍팔년도’ 경영방식을 고수한다는 뜻이다.
일본기업의 쌍팔년도 경영방식이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조업 전통을 말한다. 모노즈쿠리는 착실하게 개선과 개량을 거듭하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일본 제조업 특유의 장인정신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일본을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디지털화와 기술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지적을 더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기술혁신을 통해 단숨에 시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시대에 모노즈쿠리 전통이 의도치 않게 변화를 거부하는 주체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코카콜라 광고는 초기에는 직장생활과 여가시간의 활력과 여유를 그리다가 점점 생활속에 스며든 자사 상품을 묘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덕분에 당시 두 나라의 직장 생활과 일상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35년 전 직장과 일상의 풍경을 오늘날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 코카콜라 광고에 나타난 1988년의 일상 풍경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마치 기록영화를 보는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반면 일본 광고에 담긴 1988년의 일상과 오늘날은 콜라를 마시는 사람이 줄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변화가 없다. 어린이집 원생들과 중고교생들의 교복, 여름철이면 일상적으로 입는 유카다, 하얀색 자전거로 순찰하는 순경, 다양한 방과후 부활동, 노천온천, 여름 축제(마쓰리),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시치고산 등.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은 한국이 어느 틈엔가 흘려보내 버린 전통 풍습과 옛 모습들이 도쿄 도심에서조차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놀라곤 한다. 서울과 도쿄 생활의 가장 큰 차이를 "계절의 변화와 1년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점"이라고 답하는 한국인 주재원이 많은 이유다.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대신 옛 모습도 소중하게 간직한 일본의 일상 풍경이 매력적이라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업의 측면에서 보는 평가는 사뭇 다르다. 일본의 기업들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대체로 1988년 광고에 나오는 모습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데스크톱 컴퓨터가 노트북으로 바뀌고 사무실 인테리어가 세련된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생활의 풍경이 한결 같다는 점은 안정감을 준다. 반면 전세계 기업들이 혁신에 목을 매는 이 때 변화에 둔감한 기업들이 모인 일본 경제는 정체를 벗어나지 못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일본 재계 스스로 주요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은 IX, 유럽은 CX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일본은 여전히 쇼와모델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평가한다. IX는 ‘이노베이션 트랜스포메이션(Innovation Transformation)’의 약자다. 기술혁신으로 경제구조를 진화시키는 미국 기업들의 미래 전략이다.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빅테크들이 대표적이다. CX는 ‘코퍼레이트 트랜스포메이션(Corporate Transformation)’의 줄임말이다. GAFA와 같은 초대형 혁신 기업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M&A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유럽 기업의 4차산업 대응 전략을 말한다. 이노베이션 대신 기업의 모습과 체계를 변신시켜 미래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쇼와(昭和)시대는 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의 재위기간이다.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른 ‘좋았던 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낡고 구식’의 이미지로 더 많이 쓰인다. 코카콜라 광고에서 묘사한 일본이 쇼와 말기였다는 점에서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쇼와모델을 고수한다'라는 일본 재계의 자평은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다. 쇼와모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미국 기업이 기술혁신, 유럽 기업이 M&A를 통해 미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비해 일본기업은 여전히 ‘쌍팔년도’ 경영방식을 고수한다는 뜻이다.
일본기업의 쌍팔년도 경영방식이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조업 전통을 말한다. 모노즈쿠리는 착실하게 개선과 개량을 거듭하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일본 제조업 특유의 장인정신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일본을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디지털화와 기술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지적을 더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기술혁신을 통해 단숨에 시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시대에 모노즈쿠리 전통이 의도치 않게 변화를 거부하는 주체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