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출신 '기업 빌드업' 귀재…푸마 이어 아디다스도 살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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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 비외른 굴덴 아디다스 CEO
3년 만에 은퇴한 비운의 운동선수
푸마 최악 위기 때 구원투수로 합류
첫 직장 '아디다스'로 금의환향
3년 만에 은퇴한 비운의 운동선수
푸마 최악 위기 때 구원투수로 합류
첫 직장 '아디다스'로 금의환향
“푸마 운동화와 옷은 다 갖다 버리셨나요?” 지난 1월 독일 바이에른주 헤어초겐아우라흐에 있는 아디다스 본사. 임직원들은 9년간 푸마를 이끌다가 첫 직장이었던 아디다스의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비외른 굴덴(58·사진)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재치 만점이었다. “자선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은 빼고요.”
세계 2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새 감독이 된 굴덴에게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아디다스→푸마→아디다스로 경쟁사를 넘나든 이력 자체가 독특한 데다 위기의 아디다스를 부활시킬 막중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곧장 미국으로 날아간 그는 밥슨칼리지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27세이던 1992년 아디다스에 입사했다. 필드 대신 스포츠업계에 열정을 쏟기로 했다. 굴덴은 아디다스에서 의류·액세서리 부문 수석부사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7년을 아디다스에서 보낸 그는 유럽 최대 신발 회사인 다이히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11년간 일하며 제품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경영에 필요한 자질을 고루 습득했다. 47세 때 덴마크 주얼리 업체 판도라의 CEO로 영입된 그는 1년 만에 푸마 CEO로 변신했다. 푸마는 아디다스에서 파생한 스포츠 브랜드로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3위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굴덴은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푸마는 당시 대주주인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어링의 입김 탓에 의류 사업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는 푸마 CEO가 된 뒤 첫 언론 인터뷰에서 “푸마는 라이프스타일 회사가 아니라 스포츠 회사”라고 선언했다.
굴덴은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운동화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019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일 샘플실로 출근해 디자이너들과 상의했다”고 회고했다.
선수 후원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푸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운동선수”라고 강조하며 스타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푸마가 맨체스터시티, AC밀란과 같은 명문 축구 구단과 스폰서 계약을 맺은 것도 이때였다. 굴덴은 현역 선수 때 쌓은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굴덴이 푸마를 이끈 9년간 매출은 두 배 넘게 뛰었다. 작년 1~3분기 매출은 62억6900만유로(약 8조65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디다스는 겹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아디다스의 스테디셀러 ‘이지(Yeezy)’ 운동화의 브랜드가 타격을 입었다. 이지 운동화는 아디다스가 2015년부터 미국 힙합 가수 예(옛 이름 칸예 웨스트)와 손잡고 선보인 제품이다. 지난해 말 예의 유대인 혐오 발언이 논란이 되자 아디다스는 협업을 중단했다. 이후 제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잔뜩 쌓였다.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올해 매출이 12억유로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국 시장도 골칫거리다. 아디다스가 중국 위구르족의 강제 노동 문제를 지적하자 중국인들이 아디다스 불매 운동에 나섰다. 이 충격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악재에도 굴덴은 ‘아디다스의 재도약은 시간 문제’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엔 미국프로축구(MLS)와의 파트너십을 2030년까지 연장하는 등 ‘나이키의 텃밭’인 미국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굴덴의 성공신화는 아디다스에서도 이어질까. 아담 코크레인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굴덴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힘입어 아디다스는 3년 안에 부활할 것”으로 내다봤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세계 2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새 감독이 된 굴덴에게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아디다스→푸마→아디다스로 경쟁사를 넘나든 이력 자체가 독특한 데다 위기의 아디다스를 부활시킬 막중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부상 불운 딛고 CEO로 변신
스위스에서 태어난 굴덴은 어린 시절 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20대 초반엔 독일 FC뉘른베르크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다. 노르웨이 프로 축구팀에선 챔피언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하지만 무릎 부상 탓에 선수 생명은 3년 만에 끝났다. 굴덴은 ‘축구선수로 유명해질 수 없다면 다른 길을 찾자’고 결심한 뒤 은퇴를 발표했다.곧장 미국으로 날아간 그는 밥슨칼리지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27세이던 1992년 아디다스에 입사했다. 필드 대신 스포츠업계에 열정을 쏟기로 했다. 굴덴은 아디다스에서 의류·액세서리 부문 수석부사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7년을 아디다스에서 보낸 그는 유럽 최대 신발 회사인 다이히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11년간 일하며 제품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경영에 필요한 자질을 고루 습득했다. 47세 때 덴마크 주얼리 업체 판도라의 CEO로 영입된 그는 1년 만에 푸마 CEO로 변신했다. 푸마는 아디다스에서 파생한 스포츠 브랜드로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3위다.
‘위기의 푸마’ 매출 두 배 확대
굴덴은 위기에 빠진 푸마를 살려내면서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그가 푸마 CEO에 오른 2013년 푸마의 시장 점유율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공을 차는 사람들은 나이키 운동화를 원했고, 스케이트보더들은 반스 신발에 열광했다.구원투수로 투입된 굴덴은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푸마는 당시 대주주인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어링의 입김 탓에 의류 사업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는 푸마 CEO가 된 뒤 첫 언론 인터뷰에서 “푸마는 라이프스타일 회사가 아니라 스포츠 회사”라고 선언했다.
굴덴은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운동화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019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일 샘플실로 출근해 디자이너들과 상의했다”고 회고했다.
선수 후원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푸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운동선수”라고 강조하며 스타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푸마가 맨체스터시티, AC밀란과 같은 명문 축구 구단과 스폰서 계약을 맺은 것도 이때였다. 굴덴은 현역 선수 때 쌓은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굴덴이 푸마를 이끈 9년간 매출은 두 배 넘게 뛰었다. 작년 1~3분기 매출은 62억6900만유로(약 8조65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디다스도 살려낼까
지난해 11월 4일 아디다스가 굴덴을 CEO로 영입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날 아디다스 주가는 하루 만에 20% 이상 급등했다. 푸마를 회생시킨 굴덴이 아디다스도 구해낼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아디다스가 영입 사실을 공식화하자 시장에선 “최고의 인사”라는 호평이 나왔다.아디다스는 겹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아디다스의 스테디셀러 ‘이지(Yeezy)’ 운동화의 브랜드가 타격을 입었다. 이지 운동화는 아디다스가 2015년부터 미국 힙합 가수 예(옛 이름 칸예 웨스트)와 손잡고 선보인 제품이다. 지난해 말 예의 유대인 혐오 발언이 논란이 되자 아디다스는 협업을 중단했다. 이후 제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잔뜩 쌓였다.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올해 매출이 12억유로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국 시장도 골칫거리다. 아디다스가 중국 위구르족의 강제 노동 문제를 지적하자 중국인들이 아디다스 불매 운동에 나섰다. 이 충격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악재에도 굴덴은 ‘아디다스의 재도약은 시간 문제’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엔 미국프로축구(MLS)와의 파트너십을 2030년까지 연장하는 등 ‘나이키의 텃밭’인 미국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굴덴의 성공신화는 아디다스에서도 이어질까. 아담 코크레인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굴덴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힘입어 아디다스는 3년 안에 부활할 것”으로 내다봤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