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서방 기업들을 겨냥해 '외과수술적 보복'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서방 기업들에만 타격을 입힐 수 있도록 정밀하게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당국이 최근 두달 새 자국 산업과 연관이 적은 미국과 미국 동맹국들의 기업들만 속속 골라 급습 단속에 나서거나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 이후 5년여간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계속 거세졌다.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등 '기술 봉쇄'를 통해 중국을 더욱 옥죄고 있다.

이에 중국은 올해 들어 각종 보복 조치로 반격에 나섰다. △미 반도체회사 마이크론에 대한 안보 심사 △미 방산기업 록히드마틴, 레이시온의 중국판 블랙리스트 등재 △영국의 다국적 컨설팅펌 딜로이트의 베이징 지사에 대한 2억1200만위안(약 403억원) 벌금 및 3개월 영업정지 처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엔 중국 특유의 '인질 외교'를 다시 시작했다. 미 기업실사업체 민츠그룹의 베이징 사무소를 기습 단속해 중국인 직원 5명을 체포하거나 일본 제약회사 아스텔라스 파마의 일본인 임원을 간첩 협의로 구금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등의 중국 고문을 지낸 폴 헨레는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보복이 아니다. 중국의 이익에 피해를 줄 위험이 거의 없는 산업군과 서방 기업만을 좁게 표적으로 삼아 대응하겠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록히드마틴 등 서방의 방산기업 제재가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이들 기업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중국판 블랙리스트 '신뢰할 수 없는 기업'에 올렸다. 록히드마틴 등은 애초에 중국에 무기를 판매할 수 없는 기업이었던 만큼 중국이 입는 타격은 없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세계 3위의 D램 업체인 마이크론를 겨냥한 조사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론이 없어도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같은 중국 업체들 자체적으로 D램 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각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D램 조달을 위한 '대안'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작년 12월 수출 금지·제한 기술목록을 발표하면서 네오디뮴, 사마륨코발트 등 희토류 기반 영구자석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유출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해당 조치가 가져올 파장에 대비하고 있다. 희토류 영구자석은 전기차 제조에 필수 부품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컨설팅업체 시노 오토 인사이트의 투 레 창업자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자동차 산업이 주축인 국가들의 정부에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는 즉각적인 불안감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희토류 문제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